[정론] 일장춘몽 ‘원데이’

입력 2016-11-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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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

1996년 1월에 초연된 뮤지컬 ‘렌트’는 2008년까지 10년 이상 브로드웨이에서 롱런했고,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라이선스 공연되고 있다. 당시 소재, 주제, 음악 형식, 극 구성 등 모든 면에서 새로웠던 록 뮤지컬 ‘렌트’는 극본과 작사, 작곡 모두 조나단 라슨이라는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됐다. 그는 그 한 작품을 만드는 데 7년을 바쳤다. 그래서인지 첫 공연 전날, 까다로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극찬을 받는다. 그런데 그때 그의 심정은 알 길이 없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적인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뮤지컬의 미래’라고 칭했던 당찬 젊은이 조나단 라슨은 그날 밤 자신의 주방에서 대동맥혈전으로 급사했다. 조나단 라슨은 알았을까? 자신의 대표작이자 유작인 ‘렌트’의 생명력이 그토록 길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렌트’가 토니상 작품상을 비롯해 음악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휩쓸고 퓰리처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상, 외부 비평가상, 드라마 리그상, 오비상 등 뮤지컬과 관련된 거의 모든 상을 다 받을 때도 정작 주인공인 조나단 라슨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러나 조나단 라슨은 뮤지컬 ‘렌트’의 생명력과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 세계 뮤지컬 역사를 바꾼 혁신의 상징으로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뮤지컬 ‘라이언킹’은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을 제작한 월트 디즈니사에 세계 최고 흥행 뮤지컬을 보유하게 해 준 효자 부가가치 상품이다. 그 성공은 그들이 줄리 테이머라는 한 여성 연극인을 선택했고, 그의 예술적 노하우에 과감하게 투자한 덕분이다. 줄리 테이머는 연극 연출가, 무대 디자이너, 영화감독, 인형극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적 수식어를 달고 산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 작업을 관통하는 스타일과 철학은 하나다. 연극의 원초적 원형성과 신화적 상상력이다. 젊은 시절부터 동유럽과 인도네시아, 일본 등 예술적 영감을 찾아 떠돌며 각국의 인형극 탐구에 몰두하고 나라별 전통 연희와 샤머니즘 미술을 새로운 창조의 재료로 버무려 냈다. 그 줄리 테이머가 상업적 월트 디즈니사의 뮤지컬 ‘라이언킹’을 지구상에 없던 낯설고 경이로운 예술 작품으로 완성해 냈다. 4년간의 연구로 만들어진 ‘라이언킹’은 1997년 초연 이래 아직도 롱런 흥행 뮤지컬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2013년에는 세계 뮤지컬 역사상 최초로 10억 달러 매출 기록도 세웠다.

우리나라의 최장수 뮤지컬 ‘명성황후’도 이문열 소설 ‘여우사냥’의 각색에서부터 시작해 공연의 막이 오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최근 한국 대형 창작뮤지컬의 역사를 바꿨다고 회자되는 화제의 흥행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충무아트홀이 제작을 맡은 지 2년 만에 막이 올랐는데, 원작자인 왕용범 연출자가 구상하고 다듬은 기간을 더하면 5년은 족히 곰삭힌 뮤지컬이다. 배우 유준상이 실체도 없었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캐스팅 제의를 무조건 수락하고 몇 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뮤지컬은 흔히 롱런 비즈니스라고 한다. 다른 장르와 달리 10년 이상씩 매일 밤 빠짐없이 장기 공연하는 작품을 성공작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의 소재와 주제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이 중요하다. 하나 잘 만들어서 평생 비즈니스를 하는 상품은 매력적이다. 그런 만큼 만드는 데 들이는 공도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뮤지컬은 음악이 중심이 된 종합예술 장르라 그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각 전문 분야의 구조적이고 유기적인 협업이 중요하다.

뮤지컬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본질에 대해 새삼 되새기는 이유는 최순실 게이트로 유명해진 듣도 보도 못한 뮤지컬 ‘원데이’ 때문이다. 2014년 8월 27일 단 하루, 그야말로 원 데이 공연했던 그 뮤지컬을 박근혜 대통령이 관람하고 극찬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익사업에 쓰려고 모아 둔 국고 적립금까지 손대며 제작비 1억7890만 원을 긴급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연에는 단 한 명의 뮤지컬 전문가도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뮤지컬 배우도 없다. 뮤지컬의 생명은 라이브 음악인데 배우들이 미리 녹음된 노래에 립싱크했단다. 융복합뮤지컬이라는 장르도 모호하다. 무엇보다 뮤지컬 ‘원데이’에 대한 공연 기록이 어떤 객관적 자료에도 없다. 예술인 블랙리스트가 공개된 판국에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나 공연의 생명력은 관객들이 결정한다. 관객의 선택에 따라 죽은 ‘조나단 라슨’도 영원한 존재감을 부여받았다. 그러니 단 하룻밤의 일장춘몽인 ‘원데이’는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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