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이 모뉴엘 사태에 대한 소송에서 관련 은행 중 처음으로 승소했다.
농협은행은 모뉴엘 사태와 관련해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를 상대로 한 보증채무금 지급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선고를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농협은행은 청구 금액의 90% 이상과 지연이자를 받아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소송 청구 금액 5217만 달러(621억9000만 원) 중 5216만 달러(621억8000만 원)을 받아냈다. 농협은행은 소송과 관련해 700억 원가량의 충당금을 이미 쌓아놓은 상태다.
법원은 농협은행이 여신 심사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충분히 다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모뉴엘에 대한 대출 심사 과정에서 내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했다”면서 “법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무역보험공사가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이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면서 판결을 앞둔 다른 은행들도 한시름 덜게 됐다.
모뉴엘 사태와 관련해 무보와 소송 중인 은행은 농협은행을 비롯해 수협ㆍKEB하나ㆍKB국민ㆍIBK기업ㆍ산업은행 등 6곳이다.
하나은행은 22일, 기업은행 내년 1월,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은 내년 상반기 등 차례로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모뉴엘 사태는 전자제품 업체 모뉴엘이 해외 수입업체와 공모해 허위 수출자료를 만들어 실적을 부풀린 뒤 6개 은행에 수출채권을 매각해 거액의 돈을 빌린 사기 사건이다.
모뉴엘의 이 같은 행각이 드러나자 은행들은 무보에 가입해 둔 단기수출보험을 통해 보험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무보는 은행들이 모뉴엘에 돈을 빌려주면서 대출심사를 부실하게 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6개 은행은 개별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쟁점은 △허위 수출거래로 판명된 경우 보험계약이 성립하는지 △수출채권 매입 과정에서 은행의 심사가 적절했는지 여부다.
이번 소송에 걸린 금액은 기업은행이 990억 원, 하나은행 916억 원, 농협은행 620억 원, 국민은행이 550억 원, 산업은행 465억 원, 수협은행 110억 원가량이다. 은행들은 대체로 절반 이상 충당금을 미리 쌓아놓은 상태다.
은행권은 이번 농협은행의 소송 결과를 앞두고 긴장감이 컸다. 당초 은행권은 무보로부터 돈을 쉽게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지난달 수협은행이 1심에서 패소하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당시 재판부는 여신심사를 부실하게 한 은행에도 책임이 있다며 무보의 손을 들어줬다. 은행들은 수협은행의 결과가 각자의 소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하며 반박자료를 각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농협은행이 완전 승소나 다름없는 결과를 얻자 은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법원이 수협은행의 경우와 달리 농협은행의 여신심사 과정이 충분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다른 은행들의 부담이 줄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리도 모뉴엘에 대한 대출 심사를 절차에 맞게 진행한 것으로 안다”며 “지켜봐야 알겠지만, 승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수협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의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이 같다는 점도 남은 은행들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수협은 율촌, 나머지 은행들은 김앤장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무보 측은 “1심이 나왔지만 결과는 더 두고 봐야 안다”며 “항소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