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아랍 미국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중동 정책에 대해 연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에서 다자간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는 이날 이슬람권 55개국 정치 지도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대(對)테러 대응에 있어서 미국 부담을 줄이고, 이란을 견제하는 한편 자신의 반이슬람 이미지 불식에 초점을 맞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테러전은 다른 믿음이나 종파, 문명 간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이라면서 “테러리즘이 전 세계에 퍼졌지만 평화로 가는 길은 바로 여기 신성한 땅(중동)에서 시작된다. 미국은 여러분 편에 기꺼이 서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이날 33분의 기조연설에서 지난해 대선 때부터 자주 사용해 온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radical Islamic terrorism)’이란 표현을 뺐다. 대신 그 자리에 급진주의,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집어넣었다. 그간 이슬람권 국민의 미국 입국 제한 등으로 이슬람권에서 거센 반발을 샀다는 점을 의식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불식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중동정책과 관련한 구상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극단주의를 근절하려는 국가연합체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새로운 안보협력 체제 구축을 주장했다. 즉 이슬람 극단주의 근절을 목적으로 미국과 사우디가 주도하는 ‘글로벌 대테러 센터’를 리야드에 설립하자는 이야기다. 일종의 중동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틀을 마련하자는 구상이다. 이는 대테러에 대한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세력 소탕 등에 일정 책임을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국가가 지우도록 할 목적이다. 중동 국가의 테러 대책은 테러리스트의 미국 유입 차단과 보안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주시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동판 나토는 이슬람권 국가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아랍국가들의 군사 연합체 창설은 과거에도 논의돼왔으나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세력의 대립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사우디의 최대 38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순방 선물 보따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사우디와 앙숙 관계인 이란에 테러리즘의 탓을 돌리며 ‘이란 견제’에도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중동 각지에서 시아파 군을 조직하고 훈련시키면서 사우디 등 수니파와 대립하면서 전 세계 불안정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정부가 불법 화학 무기를 쓴 것도 이란 탓으로 돌렸다. 그는 “이란이 지원하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이번 이슬람-아랍 미국 정상회담에는 이란은 초대되지 않았다.
한편, 20일에 결과가 공개된 이란 대선에서 친서방 성향의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2015년 체결된 핵 합의 지속 이행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