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던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도시바는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한미일 연합과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차선책으로 미국 웨스턴디지털(WD), 대만 혼하이정밀공업 진영과의 협상을 재개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전날 주거래 은행들을 불러모아 놓고 반도체 메모리 사업 매각 협상 상황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일본 대형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미즈호은행, 미쓰이스미토모신탁 은행 등 7개 주거래은행 관계자가 참석했다.
도시바는 이날 설명회에서, 지난달 21일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한미일 연합과의 매각 계약 체결에 예상 외로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운을 뗐다. 한미일 연합에는 일본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 베인캐피털이 중심이 되어 한국 SK하이닉스가 출자 형식으로 참여했다. 원래 도시바는 한미일 연합과 6월 28일까지는 매각 계약을 정식 체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7월 들어서도 계약이 체결되지 않자 매각에 회의론이 피어오르던 찰나였다.
도시바는 우선협상자 측과 계약서의 각 항목을 놓고 막바지 조율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참여 방법을 둘러싼 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다 일본 정부로부터 기술 유출 우려도 사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참여 방법이 문제가 된다는 건 한미일 연합과의 협상이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도시바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하면서 협상을 중단했던 WD, 혼하이 진영과의 협상도 재개했다고 은행 측에 설명했다. 내년 3월 말 끝나는 2017회계연도까지 2년 연속 자본잠식에 빠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그 전에 어떻게든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겠다는 의도다.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진영에 반도체 사업을 팔아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협상을 재개한 WD와는 법정 공방 중이어서 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WD는 지난 5월 국제중재법원에 반도체 사업 매각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6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고등법원에 마찬가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소송은 이번 주 14일 첫 재판이 열린다. 도시바는 이번 재판에서 매각 금지 명령이 나오더라도 매각 계약 절차는 진행될 것이라며 주거래은행에 자금 지원을 호소했다.
은행들은 도시바를 끝까지 지원할 계획이지만 상황이 심각한 만큼 부담이 아닐 수 없다. 17개 지방은행들은 단기 차입금 상환 기한을 맞은 올 3월 말에 총 1000억 엔의 대출금을 회수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거래 은행들도 추가 자금 지원에는 신중한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