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20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 혼란 없이 매각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다. 그간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관련 규정 개정을 보류했던 금융위원회도 ‘삼성 봐주기’ 논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13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 자사주를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인에게서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서 상장법인은 거래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만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다. 반면 박 의원은 법률이나 규정 제·개정으로 지분 매각이 강제되는 상황에서 매수자를 찾을 수 없는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특정주주로부터 이를 모두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른 순환출자 지분 해소 등으로 대량의 매물이 나올 때 시장 주가가 출렁이는 피해를 막기 위한 사전조치다. 특히 보험업감독규정이 개정되면 삼성그룹이 이번 법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를 취득원가(장부가)로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이를 은행·증권 기준과 같게 공정가액(시가)으로 바꾼다면 삼성생명은 현재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약 20조 원을 1년 내 처분해야 한다. 보험업감독규정은 금융위원장이 직권으로 개정할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규정을 바꾸는 건 쉽지만 그로 인한 영향을 감안하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20조 원 규모 매물 중 대부분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시장에 풀릴 경우 주가 하락에 따라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자사주법 개정으로 이러한 우려가 해소되면 금융위 역시 보험업규정 개정을 보류할 명분이 사라진다.
이미 삼성그룹은 2012년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지분 해소 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당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위반으로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에버랜드가 해당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한 것이다. 당시 상법에서 비상장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도록 개정돼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위가 보험업규정을 개정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적절히 해소한다면 삼성생명 유배당보험계약자 200만명에 약 200만원씩 배당될 수 있다”며 “민생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금융위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