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결정은 백조, 공개시장조작은 물밑 발길질… 통안채 발행·증권매매·통안계정 있어
시장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시장 조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댓글 조작 사건이 화두가 되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놀랄 필요는 없겠다. 여기서 한은의 ‘공개시장조작(操作)’이란 영어로 운용(operate)이나 조정(control) 등을 의미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일을 꾸민다는 ‘조작(造作)’과 어감은 같지만 전혀 다른 뜻인 셈이다. 어쨌든 어감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드려 한은은 2015년 말 ‘조작’이란 명칭을 ‘운영’으로 변경했다. 참고로 한은 내 이를 담당하는 조직인 시장운영팀은 1997년 공개시장과에서 1999년 공개시장운영팀을 거쳐 2003년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된 바 있다.
◇공개시장조작은 통화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 한은은 통화정책 운용방식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존 통화량 목표제에서 금리 중심 운용 목표제로 변경한 바 있다. 콜금리를 목표로 하던 금리중심 통화정책 운영방식도 2008년 3월부터 현재의 기준금리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기준금리란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를 말한다. 한은이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때 기준이 되는 금리라는 뜻이다.
공개시장조작은 이런 통화정책 결정과 관계가 깊다. 한은의 시장조작 역시 지급준비금 총액을 활용해 통화량을 관리하는 방식에서 금리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탈바꿈해왔다.
그렇다면 한은은 왜 시장조작에 나설까? 여기서 잠깐 최근 시장 동향을 짚어보자.
지난달 말 국내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렸는데 외국인의 대량 매도 외에도 한·미 중앙은행 당국자들의 매파적 언급이 한몫했다. 조만간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준(Fed) 의장은 전달 26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고려하더라도 점진적 금리인상이 적절한 정책이라고 언급했다. 사실상 연내 추가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신인석 한은 금융통화위원도 지난달 27일 한은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현재의 통화정책은 완화적이라고 평가한다. 비록 중립금리가 하락했지만 현재 기준금리는 충분히 낮아 중립금리를 하회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을 비둘기파(통화정책 완화론자)로 생각했던 시장 참여자들의 충격이 특히 컸다.
참고로 한은은 1년에 8번의 통화정책 방향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매월(12번) 결정하던 것을 올해부터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과 같은 횟수로 줄였다.
신 위원의 언급이 현실화해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어떻게 될까. 아니 동결도 마찬가지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결정했다고 해서 시장금리가 알아서 그 금리수준으로 움직일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은이 달성하고자 하는 통화정책을 위해 중간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공개시장조작이다. 즉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몇 %다’라고 결정하면 시장에서 콜금리 수준을 기준금리 수준으로 작동 내지 유지하기 위해 조정에 나서는 것이다.
공개시장조작의 과제는 특히 은행의 지급준비금 규모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지준의 과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초단기인 익일물로 자금이 거래되는 콜시장을 은행이 이용한다는 점에서 콜금리는 은행 지준 상황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초과유동성 흡수를 위한 매각 조작시에는 고정 매각금리로, 유동성 공급을 위한 매입 조작시에는 입찰 최저금리로 각각 기능한다. 콜금리 역시 여전히 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시발점이 되는 시장금리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한은은 콜금리가 기준금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여기서 7일물인 RP금리가 1일물인 콜금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담보부거래인 RP의 기간위험을 무담보거래인 콜거래의 신용위험이 상쇄한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게 한은측 설명이다.
◇통안채 발행, 증권매매, 통안계정 예치가 공개시장조작 수단 = 공개시장조작은 1961년 11월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이 발행되면서 시작했다. 1962년 2월부터는 은행을 상대로 한 국고채매매조작이 가능해졌고, 1977년엔 매매대상기관의 범위를 제2금융권으로 확대했다. 또, 매매방식도 단순매매와 RP매매로 구분했다.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한 1986년 이후 국외부문에서 증발된 통화를 흡수하기 위해 공개시장조작이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공개시장조작의 주요 수단으로는 통안채 발행과 증권매매, 통안계정 예치 등이 있다. 우선 통안채는 한은이 발행하는 채무증서로 국공채 물량이 공개시장조작을 실행하기 부족했던 시절부터 주된 공개시장조작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통안채 만기는 비교적 길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나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 등으로 인한 국외부문을 통해 공급되는 유동성 등 기조적인 유동성 조절 수단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통안채 발행한도는 분기마다 금통위가 정한다. 만기별 종류는 14일물에서 2년물까지 총 13종이 있다. 다만 최근에는 182일물과 91일물, 1년물, 2년물이 주로 활용되는 중이다.
증권매매는 국공채 등을 매매해 자금을 공급하거나 환수하는 것이다. RP매매와 증권 단순매매가 있다. 비교적 시장에 잘 알려진 국고채 단순매입이 바로 증권 단순매매에 속한다.
단순매매의 경우 매입과 매각으로 나눠지며 단순매각은 통안채 발행과 효과가 같다는 점에서 굳이 할 유인이 없다. 단순매입도 시중 유동성이 일반적으로 잉여상태에 있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RP매각용 국고채를 확보하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로 시장 금리가 급등할 경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 한은은 올 들어 4번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 바 있으며 모두 RP매각용 담보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연준 금리인상 가능성 등에 시장금리가 급등하자 시장안정용으로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증권매매의 대부분은 RP매매로 이뤄진다. RP매각은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국고채를 금융기관에 매각했다가 만기일에 되사는 형태로 이뤄지며 해당 만기 동안 자금을 흡수하는 효과를 갖는다. RP매입의 효과는 정 반대다.
RP매매의 최장만기는 91일이나 7일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준 적립기간이 종전 반월(보름)에서 월(한 달)로 확대되면서 14일물과 21일물이 종종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RP매입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대부분 1일물이다. 한은금융망 참가기관이 지준마감일에 일시적으로 결제자금 부족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증권매매 대상은 공개시장조작의 효율성과 대상증권의 신용리스크 등을 감안해 국채, 정부보증채, 통안채로 제한돼 왔다. 다만 한은은 2016년 1월부터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을 한은의 대출 및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으로 인정하면서 한은의 RP매입시 대상증권으로 편입했다.
통안계정은 금융기관으로부터 기간부 예치금을 수입하기 위해 한은 내에 설치된 계정으로 단기유동성 조절 수단이다. 평상시에는 시장 친화적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예치금을 수입하지만 급격한 신용팽창 등 이례적인 상황에서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통안계정에 자금을 예치하게 할 수 있다.
만기는 91일 이내로 주로 28일물을 중심으로 1개월 이내로 운용된다. 통안계정은 중도해지가 자유롭지 못해 예치금은 지준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편 각 수단별 유동성조절 규모는 올 2분기(4~6월) 현재 통안채 발행은 171조1000억 원, 통안계정 예치는 16조5000억 원, 순RP매각은 15조8000억 원에 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