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고전하던 국내 화학사들이 대규모 중국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사드 문제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학사들은 최근 신성장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2차 전지, 반도체 등에 대한 중국 투자를 결의했다.
LG화학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통해 소형전지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중국 남경 법인에 연내 1377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소형전지 시장이 스마트폰 및 웨어러블 기기의 보급 확대, 전동공구, 전기자전거, 전동휠 등의 수요 증가로 성장하자 이번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현재 남경 법인에서 생산하는 소형전지는 중국 현지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으로 공급된다.
특히 이번 생산능력 확대가 주목되는 점은 현재 LG화학이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현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결정된 투자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지난해 12월 29일 이후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LG화학은 현지 배터리 생산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대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생산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회복은 이르면 2020년께나 가능할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SKC는 중국 현지 투자를 통해 그룹 차원의 성장 열쇠인 반도체 사업을 강화한다. SKC는 지난 26일 중국 장쑤성 난퉁공장에 800억 원을 투입해 LCD·반도체 공정용 케미칼과 자동차 부품 생산시설을 짓기로 결정했다. 수원·진천, 울산 화학 공장을 잇는 생산 콤플렉스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종합화학 역시 지난 17일 중국 최대 석유기업시노펙의 합작사인 ‘중한석화’를 통해 7400억 원 규모의 증설 투자를 단행한다. 중한석화는 공정개선(Revamp) 방식의 이번 증설로 에틸렌, 폴리에틸렌 등 화학 제품 생산능력이 기존 대비 생산량이 80만 톤 늘어난 총 300만 톤 규모를 갖추게 된다.
이처럼 화학사들이 중국 현지 사업을 확대하는 데는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전망에 기반한다. 최근 한중 관계가 해빙 무드를 보이면서 신사업 투자에 사드가 걸림돌이 되진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화학업종 자체가 B2B 거래가 많아 다른 업종에 비해 사드 영향이 크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화학사들이 이번 투자를 결정한 데는 사드 보복 조치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