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착한 기술 ‘릴루미노’ 시각장애인에겐 ‘세상의 빛’

입력 2017-12-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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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 관한 ‘뜻밖의’ 통계가 둘 있다. 첫째,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전 세계 시각장애인의 86%(약 2억 명)는 전혀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빛과 어둠 정도만 구분할 수 있는 저(低)시력자다. 둘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이 가장 많이(92%) 즐기는 여가 활동은 ‘TV 시청’이다. ‘시각장애인은 앞이 안 보일 테니 TV 시청도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란 선입견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저시력자에게 시각 보조 기기의 존재감은 막대하다. 성능이 괜찮은 시각 보조 기기만 주어지면 어느 정도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문제는 단 하나, 선뜻 구입하기 망설여지는 가격이다. 실제로 저시력자 중 대다수는 만만찮은 비용에 가로막혀 시각 보조 기기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생활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가 공개한 ‘릴루미노’는 수많은 저시력자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VR를 이용해 사물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앱 릴루미노를 개발해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릴루미노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조직해 일정 기간 동안 현업에서 벗어나 이를 구현하는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C-Lab)을 통해 1년 만에 개발돼 8월 공개됐다.

‘릴루미노’는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 확산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C랩(Creative Lab)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직원 3명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이다.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기어 VR와 호환되는 갤럭시S7 이후 스마트폰에 무료로 다운로드받아 기어 VR에서 작동시키면 된다.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을 제외한 1급에서 6급의 시각장애인들이 기어 VR를 착용하고 ‘릴루미노’를 실행하면 기존에 왜곡되고 뿌옇게 보이던 사물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릴루미노’는 기어 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릴루미노’의 △윤곽선 강조 △색 밝기ㆍ대비 조정 △색 반전 △화면 색상 필터 기능은 백내장, 각막혼탁 등의 질환으로 인해 시야가 뿌옇고 빛 번짐이 있거나 굴절장애와 고도근시를 겪는 시각장애인이 글자나 사물을 볼 때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더불어 섬 모양으로 일부 시야가 결손된 ‘암점’과 시야가 줄어든 ‘터널시야’를 가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 재배치 기능도 제공한다. 암점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은 주변 시야에 배치하고, 중심부만 보이는 터널시야는 보이지 않는 주변 시야를 중심부에 축소 배치해 비교적 정상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릴루미노’는 1000만 원이 넘는 기존의 시각보조기기 대비 성능은 유사하나 훨씬 낮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휴대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지녔다.

‘릴루미노’팀은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에 참가해, 기어 VR로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과 다른 시각보조기기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는 점에서 특히 큰 호평을 받았다.

‘릴루미노’는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 TV 시청과 독서를 할 때 더욱 잘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으며, 지난해 5월 C랩 과제로 선정됐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삶의 즐거움을 돌려준다는 의미로 과제명을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의 라틴어 ‘릴루미노’로 명칭을 정했다.

C랩 과제가 원칙적으로 1년 후 종료되는 데 비해 ‘릴루미노’는 이례적으로 1년 더 후속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릴루미노’팀은 VR에서 더 발전된 안경 형태의 제품을 개발하여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어 VR용 ‘릴루미노’도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불편사항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릴루미노는 전 세계 2억4000만 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바꿔줄 ‘착한 기술’이다. 후속 과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릴루미노를 소재로 단편영화도 제작했다. 21일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릴루미노 개발자, 영화 제작자, 출연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두 개의 빛:릴루미노’ 특별상영회를 열었다.

‘두 개의 빛: 릴루미노’는 시각장애인 사진동호회에서 만난 수영과 인수가 사진을 완성해 가며 서로의 마음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이야기를 그린 단편영화다. 배우 한지민이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소와 당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로마 테라피스트 ‘수영’ 역을 맡았으며, 배우 박형식은 차츰 시력을 잃어 가는 피아노 조율사 ‘인수’ 역을 맡아 첫 스크린 연기를 선보였다. 릴루미노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메가폰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덕혜옹주’의 허진호 감독이 잡았다.

‘두 개의 빛: 릴루미노’는 21일 오후 3시부터 공식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영화 채널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27일부터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버전도 함께 공개됐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는 기존의 영화에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 해설과 화자,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한글 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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