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수입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한국을 4월 말까지 잠정유예하는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한국이 철강 관세의 최종 면제국에 포함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는 철강 관세와 연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협상에서 불리한 카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철강을 볼모로 압박하는 미국의 요구를 적절한 수준에서 막아내지 못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철강보다 더 큰 것을 내줄 수 있다며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미국은 수입산 철강 고율 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한국을 4월 말까지 유예조치를 내리면서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따라 철강 관세 대상국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21일(현지시각) 미 하원 세입위원회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의 철강 관세 면제 여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에 달렸다”면서 “우리는 한·미 FTA를 개정하는 절차에 있으므로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전일 라이트하이저 대표를 따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 잠정유예 문제를 우선 매듭 지은 것으로 보인다.
김 본부장은 이에 대해 “한국이 4월 말까지 철강 관세 부과를 잠정 유예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한국산 철강 면제 여부를 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이 한·미 FTA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미 FTA에서 최대 관심 분야인 자동차를 중심으로 안전기준 미충족 차량에 대한 2만5000대 수입 쿼터 확대, 미국에 수출할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연장, 원산지 기준 개정 등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에서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경우 철강 관세라는 급한 불을 끄려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철강 관세 부과가 일단 유예된 것은 다행이지만, 미국이 4월까지 우리에게 대안을 가져오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커져 앞으로 협상에서 더 수세적인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무역에서 ‘반중(反中) 전선’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면 중국과의 통상 마찰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협상하면서 관세 면제 대가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의 천문학적 관세 부과에 중국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날 중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30억 달러(3조2400억 원)에 이르는 미국산 철강, 돈육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