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부진과 대주주 낮은 지분 타깃…상위 투자 10개 기업 대부분 이런 공통점 지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이 1조 원이 넘는 현대차그룹 지분을 무기로 "지배구조 개편안의 구체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2015년 이후 엘리엇이 타깃으로 삼은 기업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지배구조 변화 시기 △최근 실적부진 △오너의 낮은 지분율이라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엘리엇은 3일(현지시간) “10억 달러(약 1조500억 원) 이상의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지분을 매입했다”며 “현대차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폴 싱어 회장이 이끄는 헤지펀드로 행동주의 투자(Activist Investment)를 표방한다.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기업에 투자하고 이를 무기로 기업 경영에 관여한다. 실적이 개서되면 지분을 넘겨 수익을 남기고 있다.
재계에서는 엘리엇이 주주권익 요청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제까지 엘리엇이 타깃으로 삼았던 기업들 대부분 공통적 특징을 지녔고, 현대차그룹 역시 이런 투자 조건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삼성에 30조 현금 배당 요구했던 헤지펀드 = 엘리엇은 이날 밝힌 성명서를 통해 이 요구가 “첫 단계(first step)”란 점을 분명히 했다. 향후 점진적인 추가 요구가 있을 것을 담고 있다. 현대차 경영진의 대응 여부에 따라 강도를 높여 또다른 ‘행동’에도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반기를 들었던 바 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지배 구조 개편을 문제삼아 △삼성전자의 분할 △30조 원 현금 배당 △미국 나스닥 상장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랬던 엘리엇이 한국 재계의 시가총액 1위 삼성에 이어 3위 현대차그룹를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다.
2015년 이후 엘리엇은 지배구조 변화를 위해 계열사간 지분거래 및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삼았다. 나아가 최근 실적부진을 겪거나 오너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을 공략해 왔다
◇실적부진, 최대주주의 낮은 지분율이 타깃= 엘리엇은 2015~2016년 투자기업으로부터 평균 40.5%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변화기를 맞아 미래 전략이 불투명한 기업을 겨냥해 왔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모비스를 축으로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순환 출자 구조를 없애고 지배구조를 일원화하는 방향이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가 쥔 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대주주→모비스→현대차→기아차 순으로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엘리엇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근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세부적인 중장기 계획이 비공개에 부쳐져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내용을 공유하고, 주주에게 이익이 되도록 개편 계획을 실행하라는 요구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은 좋은 먹잇감이다. 막대한 지분으로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사회를 통해 실적 부진을 질타하며 경영진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낮은 지분율을 겨냥해 의결권 확보를 시작으로 기업 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현대기아차는 2014년을 정점으로 점진적인 판매하락을 겪고 있다. 2013년 이후 결국 1~3월 누적판매를 기준으로한 1분기 성적을 보면 여전히 현대기아차는 국내외에서 판매가 하락 중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최근 5년 사이 1분기 판매를 살펴보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지속해서 판매가 줄고 있다. 2014년 1분기에 122만7452대를 기록했던 현대차의 국내외 판매는 올 1분기에 104만8683대까지 줄었다. 4년 만에 14.5%가 줄어든 규모다.
오너가의 지분도 상대적으로 낮다. 현재 오너인 정몽구 회장이 쥔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6.96%(약 677만 주)가 전부다. 그룹측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통해 정 회장 부자가 기아차가 쥔 막대한 모비스 지분을 매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실적부진 기업 이사회 진입해 경영권 개입 = 이처럼 엘리엇이 지분을 보유 중인 기업 가운데 상위 10곳은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겪으며 적자를 낸 기업들이다.
엘리엇은 이들 기업의 지분을 사들이고 이사회에 진입한 다음, M&A와 경영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후 수익이 발생하면 지분을 팔고 빠져나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분 보유 사실을 밝히며 최근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긍정 평가한 뒤 “향후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