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주 며칠 아침에는 아이들 옆을 지나가면서 즐거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미세먼지 농도는 낮아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더욱 밝고 맑았는데 나는 ‘저 중에 누가 그 아이일까?’라고 속으로 묻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파트 1층 주민게시판에 붙어 있던 게시물 때문이었다.
살구색 A4용지에 예쁜 서체로 타이핑된 그 게시물은 이런 내용이었다. “등원 선생님 구합니다. 이 아파트 10동에 거주하는 아이 엄마입니다. 아침 7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 7살 남자아이 유치원 등원을 도와주실 분을 구합니다. 아침식사, 옷 입기, 양치 세수 도와주시고 유치원 버스 태워 주시면 됩니다. 책임감 있으시고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따뜻한 분이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저희 아이를 돌보아 주실 분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맨 밑에는 전화번호를 여러 번 써놓고 쉽게 떼어갈 수 있도록 가위질을 해놓았다.
‘돌봄이 아줌마 구합니다’가 아닌 ‘등원 선생님 구합니다’라는 첫 줄 때문인가,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쓴 글이건만 맞벌이 엄마의 절박함과 서러움이 더 깊게 느껴졌다. ‘무슨 사정일까? 친정어머니가 몸살이 난 건가? 등원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둔 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아침에 아이들 옆을 지나면서 즐거움 대신 안타까움이 생겨난 것은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전화번호를 떼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의 시청 광장 주위에 가장 먼저 나타난 아이들은 부근에 있는 국내 굴지의 통신업체 본사의 어린이집 아이들이었다. 그 회사 건물 3층 유리창에는 동그라미, 하트, 꽃송이 같은 것들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었고 아이들 의자, 목마나 장난감 자동차 등 탈것이 창가에 정리되어 있었다. 아침 산책도 정해진 일과인 듯 그곳 선생님들은 도심 출근길의 번잡함이 가라앉을 쯤이면 아이들을 걸리거나 4명씩 타게 돼 있는 작은 수레에 태워 부근을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게 회사 간 경쟁심을 자극했는지, 얼마 전부터 아이들 이름표에 적힌 회사 이름이 점점 다양해지더니 며칠 전에는 영어 교사인 듯 금발의 젊은 백인 여성도 아이들이 타고 있는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 빨간색 손수레에는 ‘MOVING IS LEARNING!’이 흰 글씨로 적혀 있었다.
거기서도 ‘등원 선생님’을 구하는 우리 동네 맞벌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더 절박하고 서러웠다. “영어 안 배워도 괜찮아요. 손수레 타고 움직이며 안 배워도 돼요. 아이가 제때 등원만 할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