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씨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앉은 아들은 손에 쥔 막대 풍선만 열심히 두들겨대고 있었다. 젊은 남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우근씨는 그 모든 것이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아들과 함께 종합운동장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다분히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본 지역 방송 뉴스 때문이었다. 잠시 후 밤 9시부터 한국과 스웨덴의 월드컵 조별 경기가 열리는데, 우리 지역에선 종합운동장 대형 스크린을 보며 함께 응원전을 한다는 것이었다.
“저기나 가 볼까?”
우근씨가 말을 꺼내자 아들의 시선이 그제야 TV로 향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이 된 아들이다. 우근씨가 마흔두 살이 되던 해 태어난 아들, 하나뿐인 아들.
우근씨는 결혼이 늦었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고 보니 어느새 마흔이 다 되어 있었다. 7년을 만난 애인과 결혼을 한 것은 우근씨 나이 마흔한 살의 일.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지방 국립대에서 받은 학위였지만, 자신은 무난히 대학에 자리를 잡을 줄 알았다. 우근씨의 전공은 영국사(史)였다. 근대 영국의 노동 계급 연구가 그의 주 전공이었다. 영문과는 많으니까, 선배들도 어렵지 않게 대학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자신의 주 전공은 특수한 것이니까, 그 역시 같은 코스를 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세상은 곧 변했다. 아무도 그가 연구한 1890년대 영국 면 공장의 노동 형태와 노동법의 상관관계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학의 어문 계열 학과들은 줄줄이 통폐합되었고, 그는 몇몇 대학의 영어회화 시간강사 신분으로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의 아내는 현재 대형마트의 계산원으로 밤 열한 시까지 일한다.
그는 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으로 갔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만 시간강사로 출근했지만, 그는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그는 거실에서, 아들은 자기 방에서 각자 책을 보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 앞 공터에서 자전거를 끌어주면서 놀아주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이제 쉰네 살이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오르는데, 다른 아빠들처럼 아이와 함께 볼을 차거나 배드민턴을 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환갑이 될 텐데… 그 생각을 하면 그는 더 우울해졌다. 아무래도 그 우울한 마음이 생각지도 않은 밤 외출을 하게 만든 것이리라. 월드컵 응원이라니, 그는 젊은 시절에도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이었지만, 종합운동장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죄다 대학생이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하긴 경기가 밤 아홉 시에 시작해서 밤 열한 시나 되어야 끝나니, 다음 날 학교에 가려면… 우근씨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근씨 옆에 자리를 잡은 젊은 남자들은 앉자마자 맥주와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종합운동장 대형 스크린 아래에선 치어리더들의 요란한 응원이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우근씨 옆자리에 앉은 남자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욕설이 들려올 때마다 우근씨의 아들은 깜짝깜짝 놀란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욕설은 이내 더 많은 사람의 함성에 묻혀버리곤 했다. 우근씨는 기분이 상했지만, 막대 풍선을 두들기며 스크린에 열중해 있는 아들의 옆모습을 보면서 참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욕설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한국 수비수가 PK를 내주었을 때 절정을 맞았다.
“저 새끼 누구야! 저 등신 새끼가 진짜!”
“감독 새끼가 문제라구! 어디서 저런 걸 수비수로 기용하고!”
우근씨가 참지 못하고 한 소리 했다.
“거 좀 조용히 봅시다.”
하지만 남자들은 우근씨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용히 보려면 집에서 보지, 왜 여기서 봐.”
“축구 씨발 욕하려고 보는 거지, 감상하려고 보나?”
남자들은 맥주 캔을 부딪치며 서로 낄낄거렸다.
“아니 근데 이 사람들이 보자보자하니까…”
우근씨는 남자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섰지만… 그러나 다시 제자리에 조용히 앉고 말았다. 맥주 캔을 들고 있는 남자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우근씨가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학생이었다. 그의 제자였다…
그는 경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아들과 함께 종합경기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이는 아빠한테 왜 일찍 가는지 묻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이 지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월드컵은 4년마다 한 번씩 열려요?”
우근씨는 멀거니 창밖을 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너무 자주 열리면 재미없잖니? 시끄럽기만 하고…”
우근씨의 말에 아들은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말했다.
“그럼 이제 아빠랑 나는 다섯 번밖에 월드컵을 같이 못 보겠네요?”
이번엔 우근씨가 멍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다섯 번의 월드컵, 이십 년의 시간, 칠십이 넘은 자신의 모습…
아들이 말했다.
“저는요, 시끄러워도 좋으니까 월드컵이 자주자주 열렸으면 좋겠어요.”
우근씨는 계속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 월 1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