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A는 지방에서 식자재 유통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신문에서는 대기업의 식자재 사업이 화두다. 아니나다를까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 계열사 B사(社)에서 A를 찾아 왔다. B사 관계자는 자신들의 인프라를 사용하면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싼 값에 상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합작법인 설립을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A는 대기업에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B사에서 직접 찾아와 합작을 권유하니, 기쁜 마음에 합작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합작계약에 따르면 B사가 파견한 직원들은 합작법인의 구매, 물류, 전산 업무를 전담한다. A는 합작법인의 대표이사로서 지분 100%를 보유하나 3년간 4차례에 걸쳐 ‘재평가’에 따라 산정된 금액을 받고 B사에게 지분 모두를 넘긴다.
B사의 파견 직원들은 최신 프로그램을 설치하겠다며 합작법인의 전산 시스템을 갈아 엎었다. A가 보기에 파견 직원들은 경험이 부족해 보였고, 역시나 새로운 프로그램이 설치된 후 누가 얼마를 주문했는지, 누구에게 얼마의 미수채권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단골 거래처가 떨어져 나갔고, A의 항의 끝에 기존 프로그램이 복원되었다.
A가 확인해보니 B사의 납품단가는 소매단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합작법인은 도매상인데, 소매단가로 납품을 받으니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A는 이를 시정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파견 직원들이 업무를 장악하고 있고, 나머지 직원들은 그 눈치만 보고 있어 시정되지 않았다.
합작법인의 경영이 악화되자 파견 직원들은 A에게 영업손실에 대한 손해배상과 미수채권에 대한 대위변제를 요구했다. 기가 막힌 A가 계약서를 살펴보니 경영악화 책임은 자신이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아무리 경영을 잘해도 당초 기업가치로 책정된 인수대금을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A는 이러한 상황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도 A의 주장을 받아들여 B사의 책임을 전제로 한 조정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B사는 이행을 거절했다.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이첩됐지만 담당자의 인사이동 등으로 처리는 지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B사는 A에게 합작계약 해제를 원인으로 주식인수대금의 반환을, 합작법인에 대해 납품대금 완납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매출채권을 가압류 했다. A는 이러한 B사의 파상적인 공세에 견딜 재간이 없다. A는 한 달 후 합작법인의 폐업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냥 상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다만 이러한 가정 속에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 경쟁 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 달 후 A와 합작법인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두루뭉술한 결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