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시절 ‘척하면 척’ 흑역사..이번엔 부동산문제로 압박..고민 깊어지는 한은
최근 집값 급등에 9·13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면서 진화에 나선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가장 근본적 원인중 하나인 저금리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후 소위 빚내서 부동산 투자하라는 ‘초이노믹스’ 정책을 시행했고 한은도 이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후 무려 다섯 번의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기준금리를 2.50%에서 역대 최저수준인 1.25%로 낮췄었다.
◇ “한번 갖고는 안될 분위기”, “성의표시 해야만 했다” = 2014년 4월 이주열 총재가 취임할 당시만 해도 이 총재는 “향후 방향성은 인상”이라며 금리인상 시그널을 분명히 했다. 반면 이같은 분위기가 180도 바뀐 것은 그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부터다.
최 부총리 취임 직후 이 총재와의 상견례 자리는 사실상 금리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은의 전 고위관계자는 “한번 갖고 안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그는 정권의 실세인 최 부총리가 ‘초이노믹스’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한 번 정도의 금리인하를 주문하겠거니 예상하면서 만남에 참석했었다고 부연했다. 실제 그 만남 직후인 그해 8월 한은은 곧바로 금리인하를 단행한다.
이후 그해 9월말 최 부총리는 호주에서 이 총재와 와인회동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 유명한 “척하면 척” 언급을 한다. 그리고 바로 직후인 10월 한은은 또한번 금리인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척하면 척” 발언후 한은 독립성 논란이 크게 확산했었다. 설령 한은이 이같은 압력에 굴복해 금리인하를 한다해도 독립성 논란을 의식해 이같은 발언 직후인 10월이 아닌 11월로 금리인하가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최근 만난 전직 한은 고위관계자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정권이 추진하면 각 정부부처는 캐비닛에서 여러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성의표시다. 한은도 (금리인하로) 성의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 “금통위 절반은 총재”..결단은 이 총재 몫 = 정부와 여당의 맹공은 어찌보면 인내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들어 그간 한은 독립성 내지 중립성을 보장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8월말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 총재는 사실상 연내 금리인상 의지를 꺾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부동산문제도 “구조적문제로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책여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올릴 수 있을 때 올려야한다는 기존 언급에 대해서도 “질의답변 과정에서 그것도 하나의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라며 그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 총재가 이같이 자신감을 상실한 이유는 12일 신인석 금통위원의 출입기자 간담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7월 금통위에서 중립으로 한발 옮겼던 신 위원이 비둘기로 유턴(U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저인플레시대 선제적 통화정책은 위험하다”며 물가가 현재 낮더라도 향후 한은 물가안정목표치인 2%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면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을 할 수 있다는 이 총재의 그간 언급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현재 대내외 경제상황은 금리인상도 동결도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는 분위기다. 인상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연준의 금리인상 가속화에 따른 내외금리 역전폭 확대와 이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 집값안정,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률과 향후 한은 물가안정목표치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물가 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반면 동결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미중간 무역분쟁 장기화와 신흥국 불안에 따른 불확실성, 수출 외에 특별히 좋을게 없는 경제상황, 하향조정이 불가피한 성장과 물가, 고용 등 한은의 기존 전망치 등을 꼽을수 있겠다.
앞선 기사(▷[김남현의 채권 왈가왈부] 8월 금통위, 감 떨어진 이주열③, 2018년 9월4일자 기자)에서도 언급했듯 통화정책은 아트(Art)다. 현직인 한 금통위원은 비교적 오래전에 “총재의 무게감은 금통위원 7명중 한 표가 아닌 사실상 절반은 되는 것 같다”며 총재의 뜻이 금통위를 지배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한은의 고민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 총리 발언으로) 되레 금리인상이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 총리 언급 직후인 14일 총재가 아닌 윤면식 부총재가 나서 부랴부랴 입장을 밝힌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총재가 직접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웠다는게 한은측의 설명이기도 하다.
결국 현 상황에서 금리결정은 이 총재가 마음먹기에 달린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