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전직 조종사들이 근속 10년을 채우지 못하면 회사로부터 지원받은 비행훈련비 일부를 반납해야 하는 회사의 규정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법원이 대한항공측 손을 들어주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26부(재판장 서경환 부장판사)는 대한항공 전직 조종사 박모 씨 외 5명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전직 조종사들은 비행경험이 없는 조종훈련생 신분이었지만 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이뤄지는 비행교육을 받고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이들은 고등과정 비행교육 훈련비 1억 7500만 원을 대한항공이 대납해주는 대신 10년간 근속하면 상환의무를 면제받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대한항공에 채용된 이들은 근속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고 훈련비 일부를 반납하게 됐다. 이에 전직 조종사들은 “대한항공이 교육비를 임의로 정해 근로자에게 부담시키고 10년 근속 조건에 따라 교육비를 변제하도록 한 것은 노예계약”이라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전직 조종사들은 대한항공이 정한 1억 7500만 원의 훈련비는 과하게 산정된 것으로 이를 기반으로 한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훈련 과정에서 사용된 비행기와 같은 기종을 이용한 한서대학교, 아시아나 항공의 위탁 교육업체인 미국의 로프트사의 비행교육 훈련비는 2000여만 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한항공의 비행교육 훈련비는 각종 시험 비용, 교육 운영을 위한 도서구입비 등 관리운영비, 대한항공 소유의 제주도 정석비행장 사용료 등 시설운영비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시설운영비는 훈련비용의 77%를 차지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다른 항공사의 비행훈련 과정과 대한항공의 훈련과정은 서로 다르다"고 지적하며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훈련비 상환 규정은 비행훈련에 큰 비용을 지출한 대한항공뿐 아니라 아무런 비용부담 없이 비행훈련을 마치고 조종사로 근무하려는 이들의 상호이익을 위해 마련된 합리적 약정"이라며 계약 자체가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은 무효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상환해야 할 금액이 연봉에 비춰 높은 수준이긴 하나 퇴사 후 중국 항공사 등에서 높은 연봉과 대우를 받을 것을 기대하며 스스로 퇴직한 것으로 보이기에 퇴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며 해당 계약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재판부는 1억 7500만 원의 훈련비 중 복리후생비, 교통비, 급식비 등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과 비슷하므로 훈련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보고 1억 6700여만 원만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소송 이후 인지대, 송달료,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소송에 든 비용을 신청하는 소송비용확정신청 과정에서 실제 들어간 비용의 6배에 달하는 액수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서 정한 계산식에 기초할 경우 1000만 원가량 산정되는 소송비용을 6000여만 원으로 산정해 신청한 것이다. 이에 원고 측 법률대리인 오수진 변호사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 소송비용을 과하게 신청한 것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전직 조종사들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