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장비 더하고 '요소수' 시스템 추가, 내구성 뛰어난 파트-타임 4WD 고수
렉스턴은 언제나 쌍용차 SUV의 꼭짓점이었다. 그만큼 제품전략의 변화를 점칠 수 있는 상징적 모델이기도 하다. 3세대 G4 렉스턴이 처음으로 스포츠(픽업) 모델을 추가한게 좋은 사례다. 쌍용차의 새로운 제품전략도 여기에서 점쳐볼 수 있다.
이제껏 쌍용차의 스포츠 모델, 즉 픽업은 언제나 렉스턴 아랫급이었다. 무쏘 스포츠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액티언 스포츠와 코란도 스포츠가 출시했어도 정점은 렉스턴이었다.
이런 상황에 G4 렉스턴이 픽업모델로 가지치기했다는 건 새로운 ‘플래그십’의 등장을 암시한다. 다양한 호화 장비를 가득 채운 최고급 SUV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 셈. 이름 역시 세단 브랜드였던 ‘체어맨’을 다시 사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상품성 개선하고 새 배기가스 기준에 대응 = 2019년형은 편의장비를 더하고 배기가스 저감 기술에 집중했다. 라이프사이클(신차개발주기)이 긴만큼 당분간은 상품성 강화 전략으로 버텨야 한다. 2019년 형은 그 첫 번째 변화다.
이미 익숙해진 겉모습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도어 손잡이에 국산 SUV 가운데 처음으로 ‘터치 센싱’ 방식을 도입했다. 손가락을 살짝 덧대면 잠금장치가 부드럽게 풀린다.
차 안에 올라보면 여느 SUV보다 높은 시트 포지션이 어색하다. 바닥에 프레임이 깔렸고 그 위에 시트를 얹은 탓이다. 운전석 시트에 4방향으로 움직이는 전동식 요추조절장치를 더했다. 시트에 억지로 몸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가죽시트의 질감도 렉스턴의 명성에 모자람이 없다.
밋밋했던 기어레버도 새 모양이다. 가죽을 덧 씌웠고 수출형 앰블럼도 심었다. 이동 감각은 이전과 동일하되 그립감이 크게 좋아졌다. 부드러운 감각이 좋아 자꾸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엔진은 최고출력 187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2.2리터 그대로다. 사실 얹을 수 있는 엔진도 마땅히 없다. 대신 배기 시스템을 크게 개선했다. 질소산화물(NOx) 덜어내기 위해 선택적 촉매환원 기술, 이른바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시스템’을 추가했다. 내년 9월부터 적용되는 유로6C 기준을 미리 맞춘 셈이다.
새 기준을 위해 2019년형부터는 주기적(1만5000~2만km)으로 요소수(요소를 약 35% 희석한 정제수)를 넣어야 한다. 요소수가 바닥났다고 차가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재시동은 불가능하다. 귀찮아졌지만 공기가 맑아진다니 당연히 따라야할 방식이다.
요소수 주입구도 따로 만들었다. 연료 주입고 바로 옆이다. 동그란 모양의 원형 연료주입구가 커다란 사각형으로 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쌍용차는 애초에 연료와 요소수를 동시에 넣을 수 있는 주입구를 개발해 특허까지 냈다. 원형 주입구를 좌우으로 돌리면 각각 연료와 요소수 주입구가 따로따로 열린다. 다만 불필요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양산 모델은 주입구를 각각 만들었다.
◇3세대 렉스턴의 첫 번째 상품성 개선 모델 = 주행감각은 이전과 동일하다. 육중한 프레임 보디는 노면의 작은 요철을 무게로 짓눌러버린다. 한없이 부드럽고 정숙한 달리기는 이제야 글로벌 수준에 올라섰다.
뒤뚱거리는 좌우 롤링은 프레임 보디 때문이다. 프레임이 없는 모노코크 타입보다 롤링이 심한데 이것은 차가 높아서가 아닌, 구조적인 특징이다. 차를 ‘오뚜기’라고 가정하면 무겁고 큰 구슬(프레임)을 바닥에 집어넣은 셈이다.
3세대 렉스턴은 초기 데뷔 때 멀티링크와 5링크 등 두 가지 서스펜션을 썼다. 전자는 말랑말랑한 승차감이 좋았고, 후자는 내구성이 탄탄했다. 마세라티와 재규어 등 니치 마켓을 겨냥한 몇몇 브랜드가 이렇게 두 가지 서스펜션을 쓴다. 렉스턴 역시 2007년 2세대 모델부터 이랬다.
2019년형부터는 승차감 중심의 멀티링크 서스펜션으로 통일했다. 내구성이 탄탄한 5링크 서스펜션은 픽업타입의 렉스턴 스포츠에만 달린다. 부품이 통일되면 생산원가도 낮아지기 마련이다.
승차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쌍용차를 처음 탄 사람은 G4 렉스턴의 딱딱함에 당황할테지만 오래토록 쌍용차를 탔다면 솜털같은 부드러움에 감동하게 된다.
네바퀴굴림 시스템도 요즘 보기드문 ‘파트-타임’ 방식이다. 운전자가 원하면 다이얼을 돌려서 2WD와 4WD를 고를 수 있다. 진공방식으로 맞물리는 앞바퀴허브는 겹겹이 막아놓은 차음재 덕에 소리없이 부드럽게 맞물린다.
쌍용차는 이미 10여 년 전인 2000년대 중반부터 첨단 AWD 시스템을 선보였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져온 4매틱 기술인데 쌍용차는 4트로닉이라고 부른다. 오프로드 보다 온로드 주행성을 강조한 시스템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꽤 진보한 기술이었다.
◇주행 중 굴림방식 바꾸는 시프트-온 플라이 방식 = 그렇게 첨단 AWD를 도입했던 쌍용차가 G4 렉스턴에 와서는 구형 굴림방식으로 사용한다. AWD는 분명 진보한 시스템이지만 고장이 잦았고 내구성도 떨어졌다. 이른바 ‘백래쉬’라고 불리는 차체 튕김 현상도 오래토록 쌍용차를 괴롭혔다.
결국 말 많았던 AWD 대신 탄탄한 내구성이 검증된 ‘파트-타임’을 다시 썼다. 주행 중 2WD에서 4WD로 굴림방식을 변환할 수 있는 '시프트-온 플라이' 방식이다. 주인에게 허락도 없이 스스로 굴림방식을 바꿔대는 요즘 SUV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게다가 원가가 낮고 수익률도 좋다.
국내 대형 SUV 시장은 렉스턴이 처음 만들었고 렉스턴이 키웠지만 그 시장을 스스로 지켜내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 2008 리먼쇼크 이후 침체됐던 대형 SUV 경쟁은 내년부터 본격화된다. 현대차가 걸출한 새 모델 '팰리세이드'를 준비 중이고, 기아차는 모하비의 상품성 개선을 반복하고 있다. 쉐보레 역시 트래버스 직수입을 예고했다. 대형 SUV 시장에서 렉스턴의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2019년형은 넉넉한 사이즈를 기본으로 여러 편의장비를 더해 상품성을 키웠다. 균형잡힌 디자인 역시 경쟁력이 충분한데다 당분간 겉모습을 화끈하게 바꿀 가능성도 없어 일단 안심이다. 지금 당장 이 친구를 손에 넣어도 몇 년 동안은 신차 분위기를 잔뜩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