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합쳐 24년 현장 경험…'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알마) 출간 인터뷰
2004년 유영철, 2006년 정남규, 2009년 강호순…. 극악무도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연쇄 살인범들을 18년간 좇은 인물이 있다. 직접 범죄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범인의 나이와 성격 성격·직업·범행 수법까지 모두 추론하며 연쇄 살인범과 심리 싸움을 벌였고, 그들의 뒷덜미를 물었다.
지난해 4월까지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범죄분석팀장으로 일한 권일용 전 경정의 이야기다. 권 전 경정은 '프로파일러'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2000년 2월 경찰이 처음으로 범죄분석팀을 만들면서 발령을 받고, 18년간 현장에서 범죄 심리를 분석했다. CSI까지 합쳐서 24년을 범죄 현장에 있었다. 그가 면담한 연쇄 살인범 등 흉악범 수만 1000명이 넘는다.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에 있는 한 카페에서 자타 공인 경찰 '1호 프로파일러' 권 전 경정을 만났다. 1989년 순경으로 경찰에 발을 들인 권 전 경정이 과학수사와 처음 연이 닿은 건 1993년이다. "당시 서울 광진경찰서(당시 동부경찰서)에서 과학수사(CSI)를 맡았어요. 감식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여서 범인이 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지르면 지문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저는 지문을 유독 잘 찾아내서 주목을 받은 거죠."
199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범죄 유형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치정 등이 주 동기였다면, 사회 증오형 연쇄 살인을 저지른 지존파와 막가파 등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그들의 철저한 계획과 증거 인멸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CSI만 있어도 충분했던 사회에 갑자기 프로파일러가 필요해진 거예요. CSI가 지문, DNA, 증거를 수집해서 분석해도 수사 방향을 설정하는 게 어려졌거든요. 당시 폐쇄회로(CC)TV도 별로 없었어요. 점점 범죄 심리를 분석해야 한다는 판단이 서기 시작한 겁니다. 왜 범인은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고민이요. 그때 윤외출 당시 서울청 감식계장이 저를 선발했어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경찰 내에서도 프로파일러의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멀뚱멀뚱 있을 수만도 없었다. 결국, 검거된 범죄자들을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 더 면밀한 수사를 위해 '최면 수사' 관련 강의도 직접 수강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최면 수사를 도입한 강덕지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장과 범죄심리 연구의 선구자인 함근수 국과원 범죄심리실장과 함께 전국 경찰서를 돌았다.
"정확히 '법 최면'이라고 하는데요. 사건 현장에 단서는 없고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을 때 최면을 걸어 희미한 기억을 구체화하고, 여기서 단서를 끌어내는 수사 방식이에요. 이전까지 최면 수사를 한다고 하면 조직 내에서도 '수사 같은 소리 하지 마라'라고 하는 분위기였어요."
최면 수사는 유의미한 결과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는 최면 수사가 활용됐는데, 특히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자'로 불린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범죄 현장 근처에 있는 중국집의 종업원이 최면 속에서 정남규의 몽타주를 그대로 떠올린 덕분이었다.
범행 장소에 다시 가보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범죄자의 심리 분석 외에도 행동을 분석해야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그의 발자국이 왜 이곳을 향해 있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를 해쳤는지 등 '그화(化) 되기' 과정이 필수였다.
범죄현장 분석 변인 데이터베이스도 권 전 경정이 마련했다. 현재 경찰의 범죄분류체계 프로그램인 스카스(SCASㆍScientific Crime Analysis System)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FBI가 만든 범죄분류 메뉴얼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범죄와 문화, 범행 도구, 심리적 과정 등 모든 것이 달라서 절반도 맞지 않더라고요. 당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1960년대부터 살인사건의 기록을 집약해놓은 파일 800건을 꺼내서 변인 200개를 만들어 놓고, 사건이 발생하면 면담을 하는 식으로 변인을 채워 넣었죠. 범행 장소, 도구, 피해자 나이, 피해 부위 등 범죄의 변인들을 유형화한 거예요."
그렇게 수백 건의 사건을 들여다보니, 범행 준비 단계부터 범행 후까지 규칙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권 전 경정은 "범죄 현장에서 보면 살해 당시 범인의 행동이 보인다"며 "수없이 많이 보고, 수없이 재구성한 결과다.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자료를 분석해서 인터뷰하고 또 인터뷰하는 식으로 메뉴얼을 정립했다"고 말했다.
한 명으로 시작한 프로파일러는 경찰청 과학수사국 안에 하나의 팀으로 자리 잡게 됐다. 정년 퇴임이 아닌 은퇴를 택한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 전 경정은 세상이 궁금해할 프로파일러의 시작을 기록화하기로 했다. 다른 출판사와 작가를 마다하고, 저자이자 전직 한겨레 기자인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와 손을 잡게 된 건 '권일용 되기'가 와 닿았기 때문.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프로파일러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고 작가는 프로파일러가 범죄자를 분석할 때 '그화'되듯 '권일용화'가 됐습니다. 실제 수사 당시의 날씨, 공간을 취재한 것 외에도 제 일상까지 완전히 복원하면서 완전히 체득하더라고요."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태어난 년도를 물었는데, "말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이 같은 신상 정보 밝히지 않고 있다. "정남규의 거주지를 압수수색 했을 때 저의 인터뷰 기사들이 스크랩된 것을 봤어요. 제가 잡은 범죄자들이 제 인적 정보를 이용해 가족을 추적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때부터 제 신상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의 조언은 현실적이면서도 단호했다. "프로파일링이 언론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범죄를 해결하는 기법이 아니에요. CSI나 수사관 등 많은 사람과 융합하는 분야라고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파일링인 연쇄 살인을 막는 해결법은 절대 아니거든요. 프로파일러가 들어가자마자 자백하는 게 어딨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