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건설투자 부진에 취업자 증가도 둔화…유가·환율·금리 상승 압박도 커져
한국 경제가 총체적 위기다. 투자·고용 부진에 따른 저성장에 유가와 환율, 금리 상승 등 ‘신(新)3고(高)’까지 겹치면서 각종 경제지표들이 금융위기 수준으로 악화하는 양상이다. 공식적으로는 ‘하강국면 진입’을 부정하고 있는 정부가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추세 반전에 나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
먼저 투자·고용은 만성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4% 줄며 6개월 연속 감소했다. 건설기성(시공실적)도 전월 대비 1.3%, 건설수주(경상)는 전년 동월 대비 32.1% 줄었다. 그나마 전년 동월 대비 감소는 올해 초 반도체 설비 증설 종료와 지난해 건설투자 증가에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월별 비교로도 감소 추세가 이어지는 것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 외에는 달리 설명이 어렵다.
투자의 후행적 성격을 띠는 고용도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 1~9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월평균 10만 명으로, 정부의 목표치인 월평균 18만 명을 8만 명 밑돈다. 반면 실업자 수는 111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만1000명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1999년 이후 19년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고용난이 계속되면서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와 취업활동을 중단한 구직단념자도 점진적인 증가 추세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도 불안한 모습이다. 반도체 쏠림 심화에 더해, 반도체조차도 수출 증가율(1~20일)이 9월 35.7%에서 9.4%로 급락했다. 수출의 마지막 버팀목인 반도체 고점 논란도 우려를 더하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선 신3고로 표현되는 유가·환율·금리 상승의 압박이 거세다.
10월 셋째 주 국제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77.88달러로 9월(76.96달러) 대비 0.84달러 올랐다. 올해 1월(66.20달러)과 비교하면 11.68달러나 뛰었다. 12개월 연속 1%대를 유지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최근 유가 상승 압력에 2%대 재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상승과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 압박도 골칫거리다. 원화 실질실효환율과 국내 기준금리 상승은 우리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증시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다. 25일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1월 2일 이후 최저치인 2027.15로 마감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추세를 반등시킬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설비투자 금융지원 확대와 유류세 인하, 민간투자 프로젝트 조기 착공 지원, 단기 일자리 공급 등 모든 정책수단을 쏟아내고 있지만, 기대효과에 대해선 정부 내에서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내 상황만 보자면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는 배경에는 수익성 악화가 있고, 그 내면에는 노동비용의 충격이 있다”며 “정부가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마련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문제의 근본과는 거리가 있고, 일부 대책은 부처별 협의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발표돼 현실화 가능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연말 경제팀 개편 가능성도 점쳐진다. 경제팀 ‘투톱’으로 불리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교체는 사실상 정책기조 전환을 의미한다. 단 정책 추진동력 유지 차원에서 동시 교체보단 순차적 교체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