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대화방] "싫어요! 도입하면 어떨까?" 청와대 국민청원, 소통과 포퓰리즘 사이

입력 2018-11-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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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메인 화면.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 소통의 상징이자, 대형 이슈의 표출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강서구PC방 살인사건, 이수역 폭행사건, 윤창호법의 계기가 된 부산 음주운전 사망사고, 아이돌그룹 더 이스트라이트 폭행사건 등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한 청원에 오른 사건이다.

A급 이슈 판독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안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거치고 있다.

바야흐로 대국민 소통의 시대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 아래 준비된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이번 정부와 국민 간 '소통의 아이콘'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30일 이내 20만 명의 국민이 동의한 청원은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의 진행 아래 정부 및 청와대 해당 업무 관계자가 관련 사안에 대한 정부 방침을 직접 브리핑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던 2017년 8월 17일 청와대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국민 소통 프로젝트인 ‘청와대 국민청원'. 시행 15개월을 맞은 지금, 국민들은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현재 모습과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본지 기자 2명이 첨예하게 갈린 국민들의 생각을 대변해 옮겨 본다.

▲고 윤창호씨의 음주운전 사고와 관련된 청와대 국민청원(사진 위)은 대표적인 순기능 사례다. 청원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사건을 언급하는 등, 정치권의 관심이 이어지며 음주운전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발의의 계기가 됐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이 여론재판으로 흐르고 있다고?

김정웅 기자(이하 김): 국민청원이 시작된 게 작년 8월. 약 1년 3개월의 운영기간 동안 이 제도가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데 기여했던 것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나경연 기자(이하 나): 굉장히 많죠. 그중에서도 하나 꼽아볼까요. 대표적으로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의 통과를 들 수 있겠네요. 지난 9월 부산에서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로 46일간의 병상 생활 끝에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한 윤창호 씨의 이야기는 친구들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널리 알려졌죠. 청원에는 4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고, 정치권도 이에 호응해 ‘윤창호법’을 발의하는 계기가 됐어요. 언론보다 빠르게 국민청원에서 이슈화됐고, 정치권의 반응과 법 개정까지 걸린 시간도 보통의 사회 의제가 해결되는 과정보다 눈에 띄게 빨랐구요.

: 청원의 ‘좋은 예’네. 윤창호 씨의 사건이 알려지며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과 처벌수위가 높아진 것은 국민청원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정말 청원자가 많았던 대부분의 청원이 윤창호 씨 사건처럼 분명한 개선안을 담은 결론으로 끝을 맺었을까?

: 아닌가요?

: 현재까지 55호까지 나온 청와대 청원답변. 최근 10회 정도를 대략 훑어볼까? ‘여고생 집단폭행, 소년법 개정 청원’, ‘인천 여중생 자살 가해자 강력처벌’, ‘식당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편 누명을 풀어주세요’,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특별 수사요구’….

: 역시 모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들이잖아요.

: 그건 맞아. 하지만 나는 최근의 화제가 된 청원 상당수가 처벌강화 내지는 수사 확대 등을 요청하고 있다는 걸 짚고 싶은 거야. 이 제도 초기에는 ‘가상화폐 규제반대’,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미혼모 보호법 도입’ 등, 요청 자체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회 이모저모의 개선점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지적하는 청원이 올라왔었어. 하지만 날이 갈수록, 특히 최근 들어서 특정 개별 범죄사건의 처벌을 강화해달라거나 무엇인가를 좀 더 면밀히 수사하라는 청원이 많아지고 있어.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이 게시판이 ‘여론재판’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거야.

: ‘여론재판’이란 말은 좀 심한 것 같지만… 최근 들어 그런 방면으로 치우친 부분도 있네요. 그렇지만 보다 자세한 수사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 추가적인 수사역량 투입을 요구하고, 그간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은 제도적 결함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게 잘못된 거라고 보긴 어렵잖아요?

: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발생하는 거 같은데, 실은 상당수의 청원들은 청와대에서 해결할 수 없거나, 혹은 해결에 나서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아.

▲‘인천 여중생 사건 가해자 처벌’에 대한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는 대통령비서실의 김형연 법무비서관. 김 기자는 김 법무비서관의 답변이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동영상 캡처)

◇“청와대 권한에도 한계가…” vs “입법‧사법부도 청원을 자극제 삼아 개선해야”

: 가장 최근인 이달 초 청와대가 청원에 답변한 내용을 가져와 볼게. "(인천 여중생 자살 가해자 강력처벌 청원에 대해) 청원에 참여하신 국민들께서도 아시겠지만 소년범 처벌 강화 청원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8월에도 같은 내용의 청원이 두 개나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직접 답변을 드렸습니다”라고 시작된 답변은 “…하지만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법 개정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14세 미만 소년의 강력범죄가 계속 늘어나는 현실에서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함께 살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마무리 지어져.

이 답변에서 청와대는 벌써 같은 사안에 대해 세 차례에 걸친 청원이 있었음에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기가 곤란하다는 점, 처벌 수위를 높이는 건 애당초 입법부 소관이기 때문에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저는 청와대라는 기관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고 답한다거나, 무리를 해서 입법‧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보다는, 제기되는 민의에 대해 자신들의 역할과 권한의 한계를 솔직하게 국민에게 설명하는 게 올바른 정부의 소통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실은 어떤 화제의 국민청원이 행정부 소관의 문제인가, 혹은 입법부나 사법부 소관의 문제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도 생각해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국가의 대표성을 띈 권력기관 중 한 곳에서 연 소통의 창구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 소통의 창구? 자세히 설명하면?

: 이 게시판은 일차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에 대해 정부 기관의 고위 실무자가 직접 정부의 입장과 방침을 설명해 주는 기회를 제공하자나요. 만약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입법‧사법의 문제라던가, 특정 언론을 폐쇄해달라는 청원처럼 국가에서 규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청와대는 나서지 말아야겠죠. 실제로 그런 청원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지도 않았구요.

그렇지만 이런 경우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간 사안이다’라며 당사자, 이 예시에서는 입법부, 사법부나 해당 언론 매체가 보다 몸가짐을 주의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 같아요. 국민청원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자정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거죠.

: 제도 개선의 실효성보다는 이슈 자체의 확산 창구 역할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이 게시판의 용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 딱히 하나의 결론을 내기 어려운 부분인 걸.

: 맞아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보다 나아지려면? 두 기자는 ‘싫어요’를 도입하면 어떨지 간략히 생각을 나눴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차라리 ‘싫어요’도 만들어주면 어떨까?

: 얘기를 좀 바꿔서, 국민청원 게시판을 긍정적으로 보는 나 기자가 생각할 때 이 제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뭘까?

: 확실히 국민 모두가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이다보니 무분별한 청원이 난잡하게 올라오는 것 같아요. 오늘 보다가 웃음이 터진 국민청원 글인데요. 버스 카드 두 번 찍었을 때 ‘이미 처리되었습니다!’하면 승객이 머쓱하니까 ‘삐’로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 (같이 빵터짐) 그래도 그런 건 귀엽기라도 하네. 심각한 문제가 된 사례로는 올해 5월에 벌어진 한 유튜버의 성추행 논란과 관련한 사건이 있었지. 사실관계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글이 사건과 무관한 스튜디오를 범행 장소로 지목하며 문제가 된 적이 있었잖아.

: 맞아요. 섣부른 국민청원이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 ‘싫어요’ 어때?

: ‘싫어요’?

: 지금 청원 게시판 보면 어떤 청원에 대해 1명이 됐던 100만 명이 됐던 ‘동의’만 할 수 있게 돼 있잖아. 이를테면 ‘좋다’는 쪽으로 일방향의 의견만 낼 수 있고 그것만 보이는 거지. 사실 1000만 명이 ‘좋다’고 하는 사안이라고 해도, 다른 1000만 명이 ‘싫다’는 의견을 낸다면 그 이슈는 ‘개선해야 마땅하다’기보다는 ‘대립이 첨예한’ 사안이라고 보는 게 맞잖아. 근데 지금 봐서는 어떤 것이 개선할 사안이고 어떤 것이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인지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없는 구조 같아. 그래서 해당 청원에 대해 싫은 사람이 ‘싫어요’도 달 수 있게 해서 밑에 따로 표시해 주면 좋겠어.

: 급하게 생각한 아이디어치고는 그럴싸하네요. 근데 선배, 하나만 물어보고 싶어요.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에요? 보수정당?

: 고등학교 1학년 때 신문 보기 시작할 때부터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였어. 지금은 민주당계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나도 국민청원 잘 되길 바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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