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단 협의체' 체제로…이 회장 아들 이규호 전무 승진
이웅열<사진> 코오롱그룹 회장이 내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아들로 회장직에 올라 그룹을 이끈 뒤 23년만에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코오롱은 후임 회장은 없이 내년부터 지주사 중심으로 각 계열사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주요 사장단 협의체를 통해 그룹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유석진 ㈜코오롱 대표이사가 신설되는 사장단 협의체의 위원장을 겸임하며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 예정이다.
다만 이 회장의 아들인 이규호 ㈜코오롱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면서 본격 경영수업을 본격화 한 만큼 머지 않아 ‘3세 경영’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코오롱그룹은 이 회장이 내년 1월 1일부터 그룹 회장직을 비롯 지주회사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28일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One & Only)타워에서 임직원 200여명이 참석해 열린 성공퍼즐세션 말미에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내년부터 그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며 “앞으로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세션이 끝난 뒤 사내 인트라넷에 그룹 임직원들에게 서신을 올려 퇴임을 공식화했다.
이 회장은 코오롱 회장직을 내려놓은 뒤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창업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저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며 “그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보려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회장은 “19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는데 3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 며 “시불가실(時不可失),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며 “그 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 놓는다”고 덧붙였다.
회사 관계자는 "이 회장이 그동안 물려받은 사업을 해왔다면 새롭게 창업을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까지 어느 분야에 창업을 할진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떠나면서 임직원들에게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더 높여줄 것을 당부했다. 이 회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산업 생태계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면 도태된다”며 “새로운 시대,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 도약을 이끌어 낼 변화를 위해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코오롱의 변화를 위해 앞장서 달려왔지만 “그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내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혀 그룹 변화와 혁신의 모멘텀을 지피기 위해 스스로의 변화를 택했음을 강조했다.
코오롱그룹은 최근 몇 년간 세대교체 인사를 통해 보다 젊고 역동적인 최고경영자(CEO) 라인을 구축해왔다. 회사 관계자는 “젊은 CEO들이 그룹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코오롱그룹은 이 회장의 퇴임에 따라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의 책임 경영을 강화할 예정이다.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One & Only)위원회’를 신설해 그룹의 아이덴티티, 장기 경영방향, 대규모 투자, 계열사간 협력 및 이해 충돌 등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할 예정이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코오롱의 대표이사인 유석진 사장이 겸임할 예정이다. 유 부사장은 2013년 코오롱 전무로 영입돼 전략기획 업무를 맡아오다 지난해 대표이사 부사장에 발탁 승진했으며, 2019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코오롱그룹은 당분간 ‘원앤온리 위원회’ 중심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편, ‘세대교체’ 작업도 본격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아들 이규호 상무가 전무로 승진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이 COO는 그룹의 패션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한다. 경영권을 바로 승계하지 않았지만, 주력 계열사에 주요한 임무를 맡으며 경영 수업을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대신 그룹의 핵심 사업부문을 총괄 운영하도록 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토록 한 것” 이라며 “그룹을 이끌 때까지 경영 경험과 능력을 충실하게 쌓아가는 과정을 중시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여성 임원 4명이 한꺼번에 승진하는 등 여성인력에 대한 파격적 발탁이 이뤄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에서 ‘래;코드’, ‘시리즈’ 등 캐주얼 브랜드 본부장을 맡아온 한경애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으며 ㈜코오롱 경영관리실 이수진 부장이 상무보로 발탁돼 그룹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재무분야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세계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등 바이오신약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코오롱생명과학 바이오신약연구소장 김수정 상무보와 코오롱인더스트리 화장품사업TF장 강소영 상무보는 각각 상무로 승진했다.
이로써 코오롱그룹은 2013년 그룹 최초로 여성 CEO를 배출하는 등 10년째 여성임원의 승진이 이어지고 있다. 코오롱은 지난 10여년 동안 대졸공채 진행시 여성 인력을 30%이상 지속적으로 뽑아오고 있으며 여성 멘토링 제도 운영 등 여성리더 육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