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판에서 제일 흔한 사기가 뭡니까? 임금체불이에요! 줄 돈 안 주는 ○○○! 속여서 이득 보는 ○○○!”
전직 게임개발자가 우리 게임업계의 '빚투'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게임방송인 김성회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를 통해 만연화된 게임업계의 임금체불을 폭로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가 최근 방영한 ‘게임업계 빚투’ 3부작의 누적 조회 수는 65만 건. 하지만 조회 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영상에 달린 4000여 개의 댓글에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게임업계의 임금체불 경험담이 절절하게 이어진 것.
26일 김성회를 만나 게임업계의 현실과 근황, 그리고 게임방송인으로서의 그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임금체불 당하니 진짜 세상을 안 느낌…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아이의 기분이었죠”
그의 구독자들이 흔히 그를 ‘지상렬 목소리’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마주한 김성회는 전혀 ‘지상렬 목소리’가 아니다. 심지어 매우 차분하기까지 했다.
‘김성회의 G식백과’만 보면 “게임업계에 임금체불이나 하는 더러운 놈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하고 핏대 올리며 소리칠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영상은 재미 삼아 MSG를 좀 친 거고요, 게임업계도 사람 사는 곳인데 사회 초년생이나 미성년자들이 실제보다 훨씬 나쁜 곳으로 볼까 봐 걱정입니다”라며 후배 ‘겜돌이’들을 걱정하는 말부터 했다.
그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경험은 약 35%. 실제로 게임업계 관계자들에게 느껴지는 임금체불의 체감도는 더욱더 높다고 한다. 김성회 본인 역시 개발자 시절 임금체불의 피해자였다.
“그때 제가 5년 차였고, 팀장이었어요. 퇴직금도 못 받고 나가는 사람들 생기고, 회사가 어렵길래 저도 사표를 썼죠. 그랬더니 사장님이 ‘성회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나가면 우리 게임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는 거야’하면서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우시더라고요.”
사장의 진실한 모습에 그는 남았다. 이후 경영은 정상화됐지만, 회사는 그를 ‘손절’했다.
“사장님이요? 연락 두절은 아주 기본적이고요.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더니 무릎 꿇고 우시던 그분이 ‘당신은 누구세요?’하는 식이었어요. 그 뒤엔 ‘게임을 못 만들어서 손해를 봤으니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는 협박부터 시작해서….”
나처럼 당하는 후배 ‘겜돌이’가 한 명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개발 현업에서 물러난 게임방송인 김성회는 그런 마음으로 ‘게임업계 빚투’ 3부작을 준비했다고 한다.
“임금체불을 다루니까 댓글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어요. 댓글의 유형이 세 가지 정도로 나뉘었습니다. 일단 ‘듣긴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유형이 있어요. 근데 나머지 두 유형이 재밌습니다. 하나는 ‘나도 게임업계 종사잔데 이거랑 똑같다!’, 또 하나는 ‘나는 게임업계 종사자는 아닌데, 이거랑 똑같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왜 게임업계의 임금체불의 체감도가 이렇게까지 높은 걸까? 그는 세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게임산업은 업력이 짧아요. 회사의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해 줄 원로 선배들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합니다. 둘째로 이직 사이클이 아주 짧습니다. 노사 간 대립이 생기면 물리적 충돌이나 노조를 결성하는 식의 해결책을 찾기보다 그냥 다른 데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론 제가 ‘겜돌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게임 개발자들이 보통 ‘너드’ 성향의 기질이 많아요. 세상 물정 모르고 그저 게임 만드는 게 좋은 사람들이죠. 그래서 더 잘 당합니다.”
그는 영상에서 임금체불 가능성이 높은 게임회사를 피하는 법을 알리기도 했다. ‘탕비실에 간식 풍족한가 살피기’, ‘화장실 깨끗이 관리되나 확인하기’ 등이다. 근데 이건 본인도 솔직히 웃자고 만든 ‘야매 감별법’이라고 인정했다.
“체불 기업 피하기의 정석이 있을 리 없죠. ‘사실 저희가 많이 어려워서, 임금 30%는 못 받는다고 각오하셔야 할 텐데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사장님 없지 않습니까? 진짜 제대로 된 악덕기업 감별법은, 사실 업계 선배들에게 귀동냥하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임금체불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 회사에 가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제 월급을 떼먹었던 그 회사에 절대 입사하지 않을 거예요.”
◇양산형 모바일게임의 시대, 최소 3년은 더 갈 것…게임은 점차 ‘남 탓’ 많이 하게끔 진화?
지난달 열린 ‘2018 블리즈컨’에서 블리자드의 모바일 야심작(?) ‘디아블로 이모탈’이 발표됐다. 팬들에게 “이 발표는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인가요?”라는 질문을 듣기까지 한 블리자드 창사 이래 최대 굴욕. 동시에 게임업계에는 천하의 블리자드도 무릎 꿇을 만큼 모바일 플랫폼게임의 수익이 달콤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게임개발자 지망생들이 10명 있다고 가정해보자. 게임개발자였던 김성회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모바일게임 개발 지망생이 3명이고, PC게임이 3명, 콘솔게임이 3명, VR 등 기타 플랫폼이 1명 정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실제 현업에서 각 플랫폼의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 비율은 6명이 모바일, 3명이 PC, 콘솔과 VR 등 기타 플랫폼을 합쳐야 1명 정도가 될 듯 하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어쩌면 모바일 종사자가 6명을 넘을 수도 있다고. 이유는 당연히 모바일 게임의 압도적인 수익성 때문이다.
“흔히 ‘양산형’이라고 할 만큼 모바일게임 대부분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합니다. 근데 중요한 건 ‘양산형 게임’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은 인벤이나 루리웹의 하드한 게이머들뿐이라는 거에요. 90%가량의 라이트 유저들은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그는 구글플레이 1위에서 10위까지의 최고 매출 게임 중 8개의 게임이 흔히 말하는 ‘양산형' 모바일게임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쓰레기’라고 비하해도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양산형 게임’에 결제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모바일게임 제작 위주의 산업 구조는 최소한 3년은 더 갈 것 같습니다.”
다만 그는 이 답변 말미에 본인의 별명 중 하나인 ‘김펠레’를 소개했다. 그가 출시 전 ‘던전앤파이터’의 대실패(‘던파’는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온라인게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대성공(얼마 전 블리자드가 단계적 서비스 축소를 발표) 등을 예견했는데 모두 빗나가며 생긴 별명이다. 그만큼 한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재미로 내다보는 개인의 전망일 뿐임을 강조했다.
어차피 재미로 보는 미래인 만큼, ‘김펠레’에게 게임 시장에 찾아올 다음 트렌드에 대한 전망도 물어봤다. “아마 게임은 점점 ‘남 탓’을 많이 하는 쪽으로 진화할 겁니다.” 엥? 게임하다 지나친 ‘남 탓’에 취해버린 게임 개발자의 망언일까? 더 들어보면 개발자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다.
“대전격투 게임에서 실시간 전략게임으로 넘어온 건 단순히 아케이드에서 PC로의 플랫폼이 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근데 ‘스트리트파이터’도 ‘스타크래프트’도 지면 전부 ‘내 탓’이에요. 1대 1로 붙어서 진 거니까요.” 하지만 그는 ‘리그오브레전드’로 대변되는 AOS 장르로의 전환과정에서 혁명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짚었다. 바로 ‘남 탓’의 발명이다.
“LoL을 하다 지면 보통 ‘팀만 잘 만났으면 이겼는데…’라고 생각하잖아요. 이기면 ‘내 탓’인데, 지면 ‘남 탓’이야. 게임 패배의 스트레스가 격감하는 거죠. 배틀그라운드는 여기에 ‘운 탓’까지 반영됩니다. 스타팅포인트 운 탓, 아이템 배치 운 탓…. PvP게임은 개인이 받는 패배의 스트레스를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화해 갈 것 같아요.”
◇전직개발자, 게임방송인, 생활인 김성회
김성회는 전업 게임방송인이다. 임금 노동자인 게임개발자에서 프리랜서인 게임방송인으로서의 쉽지 않은 결심을 하게 만든 계기가 자못 흥미롭다.
“마지막 일하던 회사에서 맡았던 프로젝트가 FPS 게임이었어요. 근데 제가 오버워치도 못 합니다. 아주 심각한 ‘FPS 멀미’가 있거든요. 수영선수가 물을 무서워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마침 그때 제게 인터넷 방송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 이참에 회사 그만 다니고 방송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방송인으로서의 삶을 결심했습니다.”
그가 느끼는 개발자로서의 삶과 방송인으로서의 삶 간의 차이는 다른 업계에서 프리랜서와 직장인의 차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익의 안정성 유무, 자유로운 일과 가정의 밸런스 조절 같은 것들이다. 현재로선 방송인의 삶이 더 마음에 든다고.
“방송인의 수입은 이번 달 0원일 수도 있는데, 이건 다음 달에 월급의 3~4배를 벌 수도 있는 거라 사실 그게 그겁니다. 그보다는 월요일의 여유가 주는 행복이 훨씬 크죠. 비 내리는 월요일 아침에 경부고속도로가 빽빽하게 막혀 있는 걸 구경할 때의 그 기쁨. 수입 0원의 공포를 이겨낼 만큼 행복하던데요?”
그와 같은 게임 방송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겐 ‘각잡고 덤비지 마라’는 조언을 남겼다. “인생 올인하듯이 방송을 시작하면 절박해지고, 그럼 방송의 질이 나빠집니다. 프로게이머이신 분은 게이머 생활하면서, 게임기자나 게임개발자도 본업을 유지하면서 겸직으로 방송을 하는 게 좋아요. 본인에게 소질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방송인으로서의 기회가 더 열릴 겁니다. 전업은 그때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전업 방송인으로서의 가장 큰 고충은 바로 악플. “개인방송은 실시간으로 평가받잖아요. 기존 연예인들보다 시청자와의 거리가 훨씬 가깝습니다. 그래서 악플로 입는 멘탈 손상도 굉장히 크고요. 어떤 분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시기도 할 정도예요. 악플을 이겨내겠다는 각오가 꼭 필요한 일인 거죠.”
나무위키 ‘김성회’ 문서에는 명암이 교차하는 평가들이 수록돼있다. ‘성공을 거둔 게임이 없다’. ‘전형적인 카카오류 액션게임 제작자’, ‘뛰어난 개발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등…. 박하게 평가받은 그의 능력이 척박한 게임산업 환경이라는 ‘남 탓’ 때문이라고 치고, 마지막으로 전직 개발자 김성회에게 본인이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를 소유했다고 가정하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물었다.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 맘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요? 저는 게임 만드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샌드박스 너머의 샌드박스. 워크래프트3라는 게임의 에디터로 ‘도타’를 만들었고, 그 MOD가 AOS 장르를 열었던 것과 비슷한 거예요. ‘게임 그 자체를 만드는 것이 즐길 거리인 게임’. ‘게임을 만드는 게임’. 내 취향대로 쉽게 게임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임. 말로 하니까 복잡하네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게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