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로 20대 국회 입성…2000명의 시민과 법안 만드는 '참여 민주주의' 실현
"국민들이 국가와 만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요.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 대통령을 뽑는 것 외에는 국가가 흘러가는 방향에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없는 거죠. 시민들이 더 많이 정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서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올바른 견제가 이뤄져요. 채널이 많아지고 다각화돼야 하는 거죠. 국회의원들도 본인만 입법을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고, 더 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을 위해 의미 있는 정치실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민(32)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는 '입법'이라는 고유의 권한을 내려놓은 이유다. 바른미래당의 전국청년위원장, 청년인재영입특별위원장, 여성가족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그는 20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9세였다. 바로 위의 신보라(당시 만 33세)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혜영(당시 만 39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도 차이가 있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20대는 김 의원이 유일했다.
'젊은 피' 김 의원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가 20대 국회에서 청년, 여성, 한부모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청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은 5000만 국민의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는 자로써 기능한다고 생각했는데, 국회의 현실은 달랐다.
12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2년간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 만남을 통해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는 설명도 함께 했다.
◇ 60배의 부담감 안고 만든 '내일 티켓'
"2030이 원하는 아젠다를 그들이 원하는 만큼 정책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이 되지 않았어요. 100명 중 한 명이 동성애자라고 가정했을 때 국회의원 300명 중 3명이 동성애자여야 하잖아요. 대표하는 성향과 성격들이 맞아야 하는데, 아니더라고요. 2030 세대가 우리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라면, 300명의 국회의원 중 최소 60명은 10대부터 30대까지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20대는 저 혼자였던 거죠. 60명이 대변해야 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한 명이 대변해야 하니, 60배의 부담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청년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젊은 세대들 안에 정치 혐오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참여 민주주의 플랫폼 '내일 티켓'을 만들었다. 국민 누구나 평소 생활하면서 느꼈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마련한다면, 그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정치에 대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국회에 들어오고 놀랐어요. 국회의원은 국민의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배웠는데, 300명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정치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상하지 않나요? 왜 아무도 이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까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화제의 '오버워치법(OVERWATCH)'도 그렇게 탄생했다. 온라인 상에서 유저들이 키보드로 게임을 하던 문화가 음성으로 바뀌면서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성희롱 형태도 바뀌고 있다는 사실도 평소 게임을 하지 않았던 그는 몰랐다.
'오버워치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서 5000번 이상 리트윗되는 등 청년들의 호응을 얻었다. 김 의원은 "법은 항상 현상의 최후단에 있으니까 사회 현상이 일어나서 문제가 되고 난 후 법안이 생긴다"며 "음성으로 이뤄지는 성희롱이 굉장히 많은데, 처벌하는 규정이 없었다. 비슷한 관련 규정으로 처벌해왔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이 자기만 알고 있는 내용, 자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회 문제로만 입법 활동과 정책 활동을 하면 한계가 있어요. 300명의 국회의원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사회 문제를 대의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죠. 그럼 국회의원이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사장되고 무시되어야 하나요? 아닙니다. 직접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충분히 담아낼 수 있어요. '내일 티켓'을 통해 청년들을 만나면서 제가 이제까지 몰랐던 내용들도 굉장히 많이 알게 됐어요. 국회에서도 젊다고 여겨지는 저조차 몰랐던 1020들의 이슈들이요."
◇ "2030 의견 전달하는 역할 위해 국회 입성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후반기 국회에 여성가족위원회에 당당히 '입성'하게 됐다. 여가위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던 시점이다. 최근 몇년 동안 1020의 정치적 관심이 업그레이드 되고 촛불시위 등을 통해 10대들의 정치적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여성 안에서도 세대간 아젠다가 셋팅되어야 할 필요성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김 의원은 "청년과 청소년을 국회가 과소대표 하다보니 이제까지 유리천장, 위안부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며 "2030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와 4050 여성들의 이슈는 다를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 사건 1심 무죄 판결 이후 '상대방의 거부의사'가 있었음에도 간음한 경우 강간죄로 처벌하고,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의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하는 이른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여성들을 위한 법안에 앞장선다는 일각의 목소리에 대해 "이게 어떻게 여성들을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노 민스 노 룰'은 직장 내에서 위력에 의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방지하는 법안이에요. '오버워치법'을 만들면서도 제일 많이 본 댓글이 '남자들은 게임하지 말라는 거냐'였어요. 굉장히 큰 오해예요. 성폭력 피해자가 지나치게 과반이 여성이기도 하지만, 소수의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도 있어요. 성범죄와 관련해 남성이 가해자고 여성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감도가 있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법'이라고 들리는 거예요.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사회적으로 갑의 위치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성적 갑질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공감대로 형성돼야 비로소 법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며 "수십, 수백년간 무시되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게 정치권의 역할이다"라고 강조했다.
◇ '부성 육아휴직' 담아낸 '김지영법'…"아이 키우는 책임 아빠에게도 있다"
김 의원은 평범한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수많은 차별을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불평등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른바 '김지영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두 개의 개정안 중 하나는 남녀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내용을, 다른 하나는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해 남성 근로자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신청을 적극 권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지영 법'을 만들기 위해 헌법을 봤는데, 정말 이상한 조항을 발견했어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돼있더라고요. 너무 맞는 말이죠. 이제까지 국회에서 모성의 보호를 위해 발의된 법안이 되게 많아요. 육아휴직을 정한다거나, 보호하고 지키는 것들이요. 그런데 진짜 세상을 바꾸는 열쇠는 사람들이 알려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은 데 있더라고요. 이 조항을 다시 보면,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부성은 없다는 거예요. 헌법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책임을 엄마에게 지우고 있더라고요."
김 의원은 '육아를 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김지영법'을 만들었다. 기존의 전제를 깨버리는 것부터 해결책이 나온다고 결론을 내리자 자신감이 생겼다. '김수민이니까 가능한 국회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도, 김 의원은 "규칙을 없애고 상상력에게 권력을 주는 일"이라는 '진짜' 대답을 내놨다.
"우리 사회는 비정상이에요. 더 창의적인 상상을 하고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이 주목받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그 시작점이 그들의 삶의 형태를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부터 시작돼야 해요. 이 방도 그래요. 모두가 이 방을 의원실로 쓰잖아요. 회의실로 쓰면 안 될 이유가 없는데 말이에요. 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아요. 그건 주어진 대로만 받아들이고 상상을 안 해요. 박스 위에서만 움직이는 거죠. 모두가 프로이기 때문에 깨지 못하는 그 박스가 정치를 공부하지 않은 아마추어인 제겐 보이지 않았어요. 의심을 하고 상상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국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도록 제가 만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