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부 차장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재판 개입, 법관 사찰 지시 등 직권남용과 관련한 40여 개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의 초반 수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 발언에도 자료 제공에 미진한 법원행정처와 마찰을 빚었고,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번번이 기각했다. 검찰이 집행하려던 압수수색 영장은 10건 중 9건이 불발됐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는 장기간 수사에 높아진 피로감이 더해져 사실상의 수사 실패로 여겨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른바 ‘이규진 업무수첩’, ‘김앤장 독대 문건’ 등을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대응 전략은 ‘모르쇠’였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선택은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검찰이 지난달 18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만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검찰 조사 때부터 일관적이던 양 전 대법원장의 대처는 자충수가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후배들이 한 일”,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2017년 2월 한 판사가 낸 사직서였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인 법원행정처로 발령된 이탄희 판사가 1주일 만에 사표를 내면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부터 김 대법원장에 이르기까지 법원행정처가 세 번의 자체 조사를 벌였으나 ‘셀프 조사’의 한계를 드러냈다. 의혹은 되레 커졌고 사법 개혁에 대한 법원 안팎의 여론이 거세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것은 재판을 통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법정 공방은 치열할 전망이다. 1심과 항소심, 상고심의 확정판결은 일러도 내년 하반기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여권을 중심으로 추진됐던 특별 재판부 설치는 동력을 잃은 지 오래다. 땅에 떨어진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법원의 자정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발은 재판의 ‘공정성’이다. 김 대법원장이 말한 법관의 독립, 좋은 재판의 근원이자 버팀목의 실체를 보여줘야 한다.
희망적인 점은 법원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안태근 전 검사장 등 권력형 성범죄 사건을 다루면서 피해자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법원은 두 명의 피고인에게 각각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은 유무죄를 떠나 한 치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 민심을 돌이킬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