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중국에서는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 즉 괴이한 것, 폭력적인 것, 음란하거나 문란한 것, 귀신에 관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사실상 금하였고, 그 영향으로 인해 소설이 경시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는 어제 한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에도 이백, 두보, 왕유, 백거이 등 소설가가 아닌 시인들이 문학의 중심에 있었고 송나라 때에도 소동파, 황정견, 육유 등 시인들이 문단의 주류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소설이나 희곡 등 ‘이야기’ 문학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은 거의 없다.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4대 기서(奇書:기이한 책)’라고 칭하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등의 소설이 등장하였고,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홍루몽’이라는 초장편 대하소설이 나타나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문단의 주류는 역시 시인들이었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유명한 시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역시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극작가나 소설가 중심의 이야기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야기 문학이 주류를 이루어온 서양은 결국 공자가 염려했던 대로 괴력난신의 이야기 강도를 계속 높여가며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창작하고, 그것을 다시 영화로 재생산하다 보니 오늘날 폭력이나 음란의 극에 이른 영상들이 범람하여 그 폐해가 심각함에도 근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절제를 바탕으로 청정성과 해탈성을 추구하는 시문학은 별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자극적인 이야기 문학과 영화의 영향 때문일까? 꼬투리 하나를 잡으면 많은 이야기를 ‘창작’하여 모함하고, 고소·고발하는 일이 난무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이러한 상황들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어떤 ‘뉴스해설’은 통속소설보다 더 통속적이고 허구적이며 자극적이다. 참 무섭고 위험한 세상이다. 순후한 이야기를 하며 오순도순 살던 평온한 세상은 이제 아예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