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3.1절 연휴를 낀 일본 여행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네티즌은 3.1절 연휴를 맞이해 일본 여행을 간다는 글을 남겼고, 일부 네티즌은 일제 침략의 역사가 담긴 3.1절 100주년에 일본으로 가는 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여행을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남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반응도 나왔다.
논란은 유튜브 채널로도 번졌다. 여행 관련 유튜브 채널 ‘청춘여락’ 제작진은 3.1절 전날인 2월 28일 일본 여행 영상을 업로드했다. 구독자들이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자, 제작진은 해당 영상 수익금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곳에 기부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일본 광고 영상을 제작하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위안부 할머니께 드린다는 말에 네티즌들은 더욱 분노했다.
코미디TV 채널 대표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 ‘맛있는 녀석들’ 제작진은 3.1절 당일 2017년에 방송됐던 ‘일본 가정식 편’을 재방송으로 내보냈다. 이에 해당 프로그램은 페이스북에 ‘부적절한 회차를 편성해 시청자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라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일부 시청자는 해당 사과문에 대해 사과할 일까지는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3.1절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부터 일본 브랜드의 재화를 구매하는 것까지, 무엇이 매국이고 무엇이 애국인지 본지 김정웅 기자와 나경연 기자가 이야기를 나눠봤다.
◇3.1절대신 다른 날 일본 가면 애국?
나경연 기자(이하 나): 저는 3.1절 연휴에 일본을 가는 게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3.1절에 일본 여행을 가는 것은 역사 의식이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거든요. 논란거리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찬반으로 나뉘는 것을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애국을 강요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 와닿아요. 선배 생각은요?
김정웅 기자(이하 김): 이 사안에 애국과 매국, 그리고 역사의식까지 언급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아. 재화나 용역을 소비하는 것에는 애국심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소비자가 자신의 수요에 알맞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 돈으로 구매하는데, 여기에 이런저런 비판을 한다면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연휴가 있을 때 여행사가 인기 있는 여행 상품을 특가에 판매하고, 소비자는 좋은 기회에 상품을 구매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잖아.
나: 물론, 기업의 존재 차체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사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좀 더 역사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3.1절 당일 일본 온천 여행, 삿포로 맥주공장 관광 이런 것보다는 만세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는 것이 본인에게도 뜻깊은 일이 아닐까요? 유럽에서는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 재해 현장을 둘러보는 다크투어리즘 프로그램이 연휴에 매진이래요. 그만큼 국민들이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김: 네 말대로 만약 여행사 사장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면 3.1절과 같은 특정일에 일본 상품을 팔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강요하는 것은 자유경제체제에 반하는 일 같은데. 그리고 3.1절에는 일본에 가면 매국이고, 다른 날에 가면 매국이 아니다? 이런 판단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지. 너 최근 초밥이나 우동 먹은 적 있지? 일주일 안에 유니클로 옷 입은 적 있지? 3.1절 하루 안 입는다고, 사람들이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나: 그렇긴 하네요. 겨우내 유니클로 히트텍을 달고 살다가, 3.1절 날 유니클로 옷 안 입고 일본에 안 갔으니 나는 애국이라고 말하기가 참 민망하네요. 그렇지만 여행 상품이든 재화든 소비를 할 때, 한 번쯤 소비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과정을 필요한 것 같아요.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하는 ‘착한 소비’가 점점 느는 것도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요?
◇겉치레보다 ‘본질’이 중요
김: 이런 말 정말 조심스럽지만, 평소 역사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꼭 3.1절이나 광복절 되면 역사의식 운운하면서 오버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물론 널 저격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줘. 나는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기념일이 되면 별것 아닌 일에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야. 본인이 역사의식을 갖고 위안부 할머니를 꾸준히 후원해 왔거나, 독도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던 사람은 특정 기념일이라고 해서 더 오버하지는 않을 것 같아.
나: 선배 말도 일리는 있네요. 서경덕 교수님의 경우에는 이제껏 해왔던 활동들이 있고, 그분의 신념을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으니, 서 교수님이 3.1절에 일본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 하더라도 비판의 대상이 아닐 것 같아요. 물론, 실제로 그러셨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기념일이 돼서 보여주기 식으로 요란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평소 역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왔는지가 더 중요하겠네요. 본질은 3.1절에 일본 여행을 갔다 안 갔다가 아니라, 지속해서 어떤 활동을 해오고 있는지가 되겠네요.
김: 그러겠지.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한국에서 가끔 애니메이션 박람회가 열려. 그러면 그곳에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거든. 그 사람들이 입은 옷을 보면 블리치나 나루토 작품의 복장이야. 그런데 그 복장은 일본 사무라이 옷인 경우도 있고, 태평양 전쟁 당시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복장이기도 해. 하지만, 나는 복장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 그 사람들이 그 복장을 한 것은 단지 만화가 좋아서일 뿐이야. 우리나라가 다시 식민지가 되기를 원한다거나, 일본에 복종하려는 생각은 절대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복장, 외모, 여행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의식이라는 거지.
나: 지속해서 세월호 희생자를 조롱하고 비난해왔던 극우 만화 작가가 4월 16일 당일에만 희생자들을 추모한다는 글을 올리면 누가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을까요? 그런 측면에서 3.1절에 일어났던 일본 여행 관련 갑론을박은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던 좋은 계기였던 것 같아요.
◇3.1절 직후 일본 벚꽃 여행 상품 ‘불티’
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여행 일정을 연결지어 버리면 우리는 평생 일본 여행을 못 갈 수도 있어. 임시정부수립일 4월 11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 14일, 광복절 8월 15일, 독도의 날 10월 25일. 1년 동안 이런저런 역사적 사건은 다 산재해 있다고. 이것뿐인 줄 알아? 독립투사들이 일본 순사에게 죽임을 당한 날, 고문을 당한 날, 재판을 당한 날 다 챙기면 일본에 갈 수 있는 날이 없어. 그러니까 내 말은 특정 날이라고 그날은 일본에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말이라는 거지.
나: 그렇긴 하네요.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1년 내내 비극이었으니,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면 365일 중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날이 없을 것 같아요. 유관순 열사 외에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희생도 엄청 많을 것이니까요. 3.1절 지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벌써 일본 벚꽃 여행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요. 개화 시기가 3월부터 5월까지라서 이 기간에 예약하려면 값을 더 내야 하기도 하고요. 이런 것 보면 3.1절 일본 여행 논란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김: 그렇다니깐. 3.1절에 일본 여행 안 가고, 그다음 날 벚꽃 보러 일본 가는 건 괜찮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비약이야. 너 벌써 나한테 완전히 설득됐구나?
나: 사실 일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진을 보고 마음이 설렜거든요.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냥 이번 봄에 갈래요. 벚꽃은 보되, 위안부 할머니 후원과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합의하려고요. 이거는 겉치레가 아닌 본질에 가까운 행동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