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배당 요구는 엘리엇 고도의 전략, 배당 제안 희생하고 관건인 이사회 진입 노려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표 대결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진짜 싸움은 주총 이후부터 시작”이라는 분석이 재계의 중론이다.
엘리엇이 터무니없는 고배당을 제안한 것은 진짜 관건인 ‘이사회 진입’을 얻어내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일 재계와 주요 의안분석기관 등에 따르면 22일로 예정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총은 애초 예상보다 사측이 쉽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은 물론, 현대차와 모비스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까지 엘리엇에 반대표를 던졌다.
글로벌 양대 의안자문기관 가운데 하나인 글래스 루이스 역시 일찌감치 사측의 안건에 찬성표 행사를 권고했다. 또 다른 자문기관 ISS도 엘리엇의 고(高)배당 제안에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다.
이 2곳의 자문기관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현대차 지분의 약 44.57%를 쥔 외국인 투자자에게 향배를 결정짓는다.
지난해 5월 임시 주총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던 현대차는 이 2곳 자문기관의 반대 입장이 나오자 개편을 중단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입장을 내놓지도 못했던 때였다. 어차피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져도 현대차의 승산은 없었다.
올해 정기주총은 상황이 다르다. ISS와 글래스 루이스는 물론 2대 주주인 국민연금까지 찬성표를 권고했다. 해볼만 하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작년 5월에 패배했던 현대차가 올해는 판정승을 거둔 셈”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맞비교가 불가능하다. 작년에는 △모비스 분할 △분할법인의 글로비스 합병 등 굵직한 현안이 안건이었다. 올해는 단순하게 △배당금 규모와 △사외이사 추천이 전부다.
물론 이번 정기 주총에서 현대차가 엘리엇에 맞서 승리한다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향후 ‘지배구조 개편 재추진’ 때 현대차 주장의 당위성은 커지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영향력은 확대된다.
엘리엇 역시 새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이후 엘리엇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아시아 기업들 대부분 △대주주의 낮은 지분율 △최근 실적 저하 △지배구조 개편 추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현대차가 정확하게 이 조건에 부합된다. 그만큼 엘리엇의 '기업 사냥' 노하우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번 주총에서 엘리엇이 내놓은 제안도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기말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2만1976원(총 4조5000억 원)의 배당을 제안했다. 지난 5년간 배당총액을 넘는 금액이다. 누가봐도 터무니없는 제안이다.
재계에서는 “단기수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의 전략”으로 간과했다. 그러나 IB업계의 분석은 다르다.
투자업계에서는 이 조차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주주제안(고배당)을 내놓고 이를 ‘희생양’으로 포기하되, 진짜 관건인 이사회 진입을 노린다는 의미로 해석 중이다.
실제로 ISS와 글래스 루이스는 “현대모비스 사외이사 증원 때 엘리엇 후보를 찬성한다”고 밝힌 상태다.
모비스 주총에서 정관 변경이 가결되고 이사회 구성을 3∼11인으로 확대되면 엘리엇 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IB업계 관계자는 “5년치 배당을 한꺼번에 달라는 것은 상식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면서도 "엘리엇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관철되기 어려운 고배당 제안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진짜 관건인 이사회 진입을 노리는 노림수다”고 말했다.
현대차 보유 지분(0.2%)으로 얻을 수 있는 배당보다, 이사회 진입으로 교두보를 마련하고 향후 더 큰 파이를 노리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엘리엇이 유럽에서 굵직한 통신사를 사냥할 때에도 이번처럼 비슷한 전략(점진적 이사회 진입)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방식이든 이번 정기 주총에서 현대차와 모비스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현대차와 엘리엇의 싸움은 이번 주총이 끝난 이후에 본격화될 것이라는 게 투자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