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1996년경에 게재된 실제 광고다.
광고를 보자마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대체 왜 이런 콘셉트의 광고를?
일단 이 광고는 삐삐라는 상품을 다루고 있다.
삐삐는 10~20자 정도의 숫자 텍스트를 주고받는 무선호출기를 일컫는다. 숫자로 된 텍스트 메시지가 날아오면 ‘삐삐’ 소리가 나서 삐삐다. 발신은 전화로만 할 수 있고, 삐삐는 수신만 가능하다. 옛날엔 다 이런 것들 쓰고 살았다.
다들 보면 느끼시겠지만, 지금 삐삐가 문제가 아니다. 광고 속 여성 모델은 명백하게 히틀러의 코스튬플레이(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또 황당한 건, 쓸데없이 고증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콧수염은 기본이고, 광고를 보는 이들이 혹여라도 나치가 아닌 다른 코스튬플레이라고 착오라도 하실까봐 나치의 상징 ‘철십자 훈장’까지도 완벽히 재현했다. 허, 나 참….
히틀러를 인용한 까닭은 이러하다. 무선통신기술 개발 초기엔 기술 수준이 낮아 숫자 몇 개 전송하는 ‘삐삐’가 터지는 데도 있고, 안 터지는 데도 있고 그랬다. 이 제조사는 자사의 삐삐가 ‘전국을 지배’할 정도의 수신감도를 가졌다고 홍보하는 중이다.
수신감도가 전국을 지배→지배하면 히틀러의 나치 독일→그래서 히틀러 코스프레…. 기적의 논리 전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 광고가 게재됐다고 생각해보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아니 애초에 히틀러 대신 이순신 장군이나 거북선을 빌렸어도 의미는 유사했을 것이다. 그런 광고가 실제로 있기도 하고. 무슨 생각으로 저랬던 걸까? 그냥 눈에 띄고 싶었던 걸까?
◇자주 범해지는 실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렇다.
나치 독일의 폭압에 의해 피해를 본 개인 혹은 민족이 참담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정서적 공감.
심지어 우리나라 역시 2차 대전 무렵에 독일-일본-이탈리아의 추축국(樞軸國)에 대항한 연합국 진영에 속했다는 역사적 인식.
당사국인 독일이었다면 사회적 지탄에서 그치지 않고 현행법에 의거해 처벌될 수 있을만한 중죄로도 간주될 수 있다는 규범적 가치.
광고를 제작할 때 당연히 고려해야 할 요소들 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진지한 고찰을 해 보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면 '이런 걸작'이 완성된다.
실은 별로 특이한 사례도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엔 이런 적도 있다.
옛 일본군의 위안부 운영을 콘셉트로 누드 화보를 찍었던 어느 배우가 있었다. 위안부는 한 국가의 공권력이 식민지 여성의 성을 짓밟은 전쟁범죄다. 이 한-일 양국 관계의 가장 민감한 ‘역린’을 ‘성 상품화’ 콘텐츠로 재해석한 것이다.
위안부?→성적 유린?→성?→그럼 누드. 꼬리를 무는 연상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만들면 역시 이런 상품이 나온다. 예시가 둘 밖에 없어서 기사에 두 개만 언급한게 아니다. 이런 식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기반한 광고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아서, 기사의 여백이 부족해 두 개만 언급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없앨 수 있을까? 어떤 저작물을 만들기 전에 요모조모로 생각을 많이 하면 된다. 생각해보고, 좀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된다. 그것만 지켜도 이런 저작물은 애초에 등장 자체를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