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남북 분리 개최 추진 비화…中 철도통해 선수단 보내려다 北 반대로 무산
외교부는 31일 이 같은 내용을 담긴 30년 경과 1987∼88년 외교문서 1620권(25만여 쪽)을 원문해제(주요 내용 요약본)와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외교문서는 당시 KAL기 폭파사건과 관련해 전두환 정권이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를 대선(1987년 12월 16일) 전인 늦어도 15일까지 국내로 데려오려고 외교부가 바레인 측과 접촉한 정황이 담긴 외교문서다. 이 과정에서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가 미국이 대선 이후 보내야 한다고 바레인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측에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보고문서도 공개됐다.
당시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과 면담 뒤 “늦어도 (1987년 12월) 15일까지 (김현희가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며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고 보고했다.
또 그는 “마유미(김현희)의 인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미묘한(Delicate) 것으로 생각된다”며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KAL기 폭파사건의 대선 이용의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박 차관보의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나 ‘마유미 인도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 가능성’ 표현에서 전두환 정권의 대선 활용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특히 막판 김현희 국내 이송이 연기되자 박 차관보가 “커다란 충격”,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힌 점에서 당시 매우 급했던 정황을 보여줬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88서울올림픽과 관련한 뒷얘기도 나왔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올림픽 참가 명분을 제공하고자 88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 분리 개최하자고 북한에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1984년 LA올림픽의 공산권 국가 대거 불참의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한국 측에 88올림픽 일부 종목을 북한에서 분리 개최하는 방안을 1984년 9월 27일 제안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북한은 결코 이 제안을 수락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국은 ‘안된다’고 하지 말고 ‘IOC가 공식적으로 제안해올 때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용의가 있다’ 정도로만 답하면 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LA대회 보이콧 이후 서울대회에 오고 싶어하고,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단 한 가지 장애물이 북한”이라며 “그래서 한 가지 핑계를 찾고 있는데 만약 북한이 2∼3개 종목 개최를 수락하지 않으면 서울에 갈 구실이 되는 것”이라고 한국 정부를 적극 설득했다.
실제 북한은 88올림픽 남북 분산개최를 수용하지 않았고 소련을 비롯한 대부분 공상권 국가들이 참석해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당시 불참 국가는 북한을 비롯해 알바니아·니카라과·쿠바·에티오피아·세이셸 등이다.
이 밖에 88서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한국 정부의 몰이해로 호주에 개최할 뻔한 비화와 중국이 88올림픽 출전 선수단을 열차를 통해 한국에 보내려 했지만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외교문서도 나왔다. 이와 함께 6·25전쟁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국가인 콜롬비아가 한국 측에 아무런 통보 없이 북한과 1988년 수교해 우리 정부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도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