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상륙 10년·3억 사용자...‘라인의 아버지’ 신중호가 말하는 라인 탄생 비화

입력 2019-04-08 16:14수정 2019-04-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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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라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일본인 대다수가 무료 메신저 앱 ‘라인’을 통해 대화한다. 일본 상륙 10년 만에 이룬 쾌거다. 일본 석권을 발판으로 라인은 동남아로 세를 늘려갔다. 사용자 수 100만 명을 넘기자던 애초 목표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1000만 돌파라는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 사용자는 다음해에 1억, 또 그 다음해엔 3억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라인은 현재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위챗에 이어 메신저 순위 4위를 달리고 있다.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씨. 니혼게이자이신문
라인의 거침없는 성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 신중호가 있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는 세간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그가 처음으로 라인 탄생 비화를 밝혔다.

여느 역사가 그런 것처럼 영웅은 홀로 탄생하지 않았다. 그를 눈여겨보던 ‘주군’에 의해 때가 되자 부름을 받았다. 신중호를 불모지 일본으로 보낸 것은 네이버 창립자 이해진이었다. 2000년 일본에 진출한 네이버는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구글과 야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5년 만에 철수했다. 쓰라린 패배였지만 일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해진이 투입한 구원투수가 바로 신중호였다. 적진으로 들어가는 신중호에게 이해진은 “한국에서의 성공 경험은 버리라”고 조언했다. 2008년 일본 땅을 밟은 신중호는 ‘여기서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신중호의 일본 경험은 미천했다. 도쿄 여행을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언어부터 난관이었다. 당분간 한국어는 잊자고 마음먹고 닥치는 대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듣고 외웠다. 바닥부터 시작한 지 1년 만에 <네이버 검색과 큐레이션 플랫폼 ‘네이버 마토메’>를 동시에 출시했다. 일본 시장 반응은 형편없었다. 한 간부는 당시 상황을 “심장이 멎어가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검색 서비스에서 실패한 신중호는 관련 서비스를 투입하며 회생을 시도했다. 20여 개 서비스 중 일부는 앱 순위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지만 잠깐뿐이었다.

연이은 패배는 신중호를 위축시켰다. 때마침 한국에서 들려온 소식도 그를 절망에 빠뜨렸다. 이사회에서 “왜 승산이 없는 일본 사업에 자금을 낭비하는가”란 질타가 이어졌다고 했다. 이해진이 “네이버 재팬이 실패하면 자신이 책임지고 사임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는 소식도 들렸다. 조바심은 커졌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2011년 3월 10일, 일본에서 만난 이해진에게 신중호는 언제 철수해야 할지를 물었다. 자포자기였다. 그러나 이해진은 단호했다. “네가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기회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이해진에게 ‘철수’를 얘기했던 바로 다음날인 11일, 일본을 뒤흔든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문자 메시지나 메일을 주로 쓰던 일본에서 쓰나미로 통신이 끊기자 친구나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신중호는 여기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통신망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메신저 개발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 연인 등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깊고 돈독하게 해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야말로 일본이 원하는 것”이란 깨달음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미국에서는 왓츠앱,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무서운 기세로 확장하고 있었다. 신중호는 현재 라인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일본으로 불렀고 세이클럽을 개발한 프로그램 전문가 고영수도 데려왔다. 3개월 전부터 신중호의 지령을 받고 ‘소셜앱’을 연구하던 팀까지 합세해 ‘미도리 토크’ 개발팀이 휴일도 반납한 채 매달렸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11년 6월 라인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후 무료 음성통화와 이모티콘 서비스인 ‘스티커’ 기능을 추가해 차별화를 꾀하며 일본인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라인의 탄생 과정을 지켜본 이해진으로부터 “당신이 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찬사를 들은 신중호는 그렇게 마음의 빚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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