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종합검사 앞두고 보험사와 전쟁 2라운드...금융위 법제화 수용 최대 관건
금융감독원이 ‘부실 보험상품 리콜제’ 도입을 추진한다. 최근 부실약관 등으로 논란 중인 치매보험의 소비자 피해를 구제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윤석헌 원장이 추진하던 종합검사가 힘이 빠지자, 새로운 압박카드를 꺼내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11일 오전 보험부문 실무협의회를 열고 치매보험 현황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은 “실효성 있는 소비자 피해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리콜제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부실상품 리콜제’ 법제화 방안을 금융위에 요청했다.
금감원이 보험사 상품에 대해 리콜 조처를 내린 사례는 있지만, 법제화를 추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금감원은 보험사가 연금전환이 가능한 종신보험을 연금보험이나 저축성보험처럼 판매한 상품 가운데 9개 종신보험을 판매 중지하고 리콜 조치했다. 당시 리콜 조치를 받은 상품 건수는 15만 건 이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콜 조치 당시 법적 강제성이 없었고 보험사 자율에 맡겨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보험사는 일부 상품만 리콜 조치를 하고 대부분 판매 중지에만 그쳤다. 이에 법제화를 통해 법적 강제성을 갖도록 한다는 게 금감원의 복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금융상품 리콜제에 대해서는 2014년에 국회에서 논의된 적이 있었다. 치매보험이 리콜 대상이라는 건 아니고 모든 금융상품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감원의 요청을 금융위원회에서 수용해 법제화될지는 미지수다. 모든 법령규칙 제정·개정권과 최종 제재권은 모두 금융위에 있기 때문이다. 법제화되기까지는 금융위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종합검사 등의 선례를 살펴보면 금융위의 협조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업계는 “금감원이 ‘힘 빠진’ 종합검사를 대체할 만한 카드를 꺼낸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금감원의 의도대로 리콜제가 법제화된다면 치매보험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에도 적용된다. 금감원과 대치 선상에 있는 즉시연금, 암보험 상품까지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보험사들을 압박할 또 다른 규제 수단을 꺼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치매보험은 과도한 보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따져보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해가 될 게 없다”며 “금감원이 지금 시점에서 리콜제 법제화를 꺼내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도 검사 등 금융상품을 제재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는데 새로운 규제를 만들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불필요한 규제 남용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치매보험은 최근 보험사가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며 급성장했다. 손해보험사는 올해 들어서만 80만 건의 치매보험을 판매하며 작년보다 인보험 실적이 30% 이상 급증했다. 이는 지난해 말 경증치매까지 보장하는 상품이 출시돼 큰 인기를 끌자 모든 보험사가 경쟁적으로 비슷한 상품을 판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도 치매보험이 과열 양상을 띠자 제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생명보험사는 이번 달부터 새 경험생명표를 적용하기 위해 보험료와 상품 보장 내용을 개선하면서 지난달 말 기존 상품을 절판했다. 새 상품은 보장 내용을 변경해 내놨다. 당시 보험사는 “회사 전략상 보장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선 자체 손해율 테스트 결과 부담이 너무 커 기존 상품을 폐지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치매보험 약관과 보험료 적정성 여부를 점검해 상반기 안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판매 중인 치매보험의 불완전판매 여부도 함께 점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