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예전에는 천하의 모든 것이 다 변한다 해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심 또한 변할 수 없다는 말을 당연하게 여기고 했었는데 요즈음엔 그런 말이 그다지 쉽게 나오지를 않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옛날과 판이하여 갈등이 적지 않다. 이런 갈등을 ‘세대 간 갈등’의 한 양상으로 간주하여 오히려 당연시하면서 ‘효(孝)’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래서일까?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여 죽이고,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는 보도가 가끔 나오고 있다. 10년에 한 번 있어도 끔찍한 일인데 올해만도 벌써 몇 차례나 이런 보도가 있었다. 결혼율과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젊은 층에서는 아예 ‘효’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자식을 낳지 않았으니 효도를 받을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내가 효를 받을 일이 없는데 나만 부모에게 효를 한다면 이건 나만 손해(?) 보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모는 부모대로 “효도?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귀찮게만 말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저 살기도 너무 힘들어요, 엄마 아빠 말년은 스스로 해결하세요”라는 심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보험회사의 ‘노후보장’ 상품광고만 난무하고 있다.
효(孝)는 우리가 다져온 자랑스러운 미풍으로서 한때는 사회복지의 천국으로 불렸던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3대가 함께 사는 우리네 가정을 보며 ‘이게 바로 천국’이라며 부러워한 적도 있었는데…, 물론 지금도 우리 사회엔 효자·효녀가 많다. 그러나 효의 깊이가 전과 같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孝,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요양시설이나 복지시설로 대체해야겠지만, 아예 처음부터 그게 공식(?)이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오늘 어버이날, 우리의 ‘효’ 문화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