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단 전통시장이 물건이 확실히 저렴하잖아요. 물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쇼핑 환경이 좋지만, 전통시장엔 그래도 '정'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전통시장도 조금만 환경이 좋아진다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추석 대목에도 경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등포전통시장을 찾은 김희영 씨)
4일 가격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이 전통시장은 작년보다 4200원(1.8%) 내린 23만2100원, 대형마트는 1만4860원(4.8%) 오른 32만4460원으로 조사됐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9만 원가량 저렴한 셈이다.
특히 올 추석은 작년보다는 열흘, 재작년보다 3주나 빨라 아직 본격적인 출하 시기가 이른 햅쌀과 과일류는 지난해보다 가격이 올랐으나, 채소류는 올해 전례 없는 작황 호조에 봄철 확보한 저장물량까지 더해져 가격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과연 이런 통계는 현장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는 비용과도 비슷할까.
기자는 영등포에 있는 백화점, 대형마트, 전통시장을 찾아가 추석을 앞둔 현장의 분위기와 가격을 살펴보기로 했다. 남자지만, 평소 가족과 함께 차례상 차리기 등의 명절 준비를 많이 해본 터라 시장이나 대형마트 취재는 어렵지 않았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영등포역에 자리한 롯데백화점이었다. 일반적으로 백화점에서의 물품 가격이 비쌀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차례상에 올린 물품들의 가격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추석 대목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채소, 육류, 생선류, 과일류 판매대마다 테이블과 담당 직원들을 배치해 고객들을 반겼다. 이들은 전화로, 혹은 현장에서 선물세트를 주문받고 안내하는 직원들이었다. 백화점답게 선물세트 가격은 다소 비쌌지만, 그래도 기업 혹은 개인으로 선물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방문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차례상 품목들을 살펴보자 역시나 비싼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밤은 100g에 2000원, 제수용으로 올릴 만한 배는 2개 1만4800원, 사과는 3개 1만4800원 수준이었다. 보통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감의 경우, 올해 추석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관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삼색나물로 올라갈 데친 고사리는 100g 3980원, 데친 도라지 역시 100g 3980원이었으며, 시금치는 한 팩에 6800원이었다.
생선 판매대에서 도미는 한 마리 2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조기는 선물세트용만 진열해 놓았다.
돼지고기는 삼겹살이나 목살 수육용이 100g에 4400원이라고 가격표가 붙었으나, 기자가 방문할 때는 3080원으로 30% 할인해 판매하고 있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백화점은 다소 한산했다. 아직 차례상을 위한 쇼핑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대다수가 가볍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자 장을 보거나, 선물세트 구매를 위해 상담을 하는 사람이 전부였다.
곧바로 자리를 이동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이마트 영등포점. 신세계백화점 지하에 있는 이마트 영등포점은 백화점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이곳에서는 추석 대목 분위기가 제법 났다. 대형마트답게 입구 한쪽에는 추석 선물세트를 모아 진열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추석 선물세트 앞에는 직원들이 한 명씩 자리해서 선물세트를 찾으려는 고객에게 상품을 안내하고, 예약 배송 등을 설명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선물세트를 살펴보는 사람들은 적었다. 대다수가 생필품이나 일일 장을 보기 위해 방문한 모습이었다.
서울 영등포에 거주하고 있다는 강태일(44) 씨는 "추석을 앞두고 마침 휴가여서 가족들과 쇼핑을 하러 나왔는데 막상 대형마트에서도 추석 선물세트만 눈에 띄고, 차례상 마련을 위한 나물이나 과일, 생선 등은 찾아다니기 힘들었다"면서 "아무래도 차례를 지내는 집도 줄어든 게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마트에서는 대추 상품이 100g에 1980원, 특품이 100g 2480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배는 3개 9980원, 사과는 5개 6900원이었다.
차례상에 올릴 삼색 나물을 위한 시금치는 1팩에 5180원, 고사리와 도라지는 각각 100g에 2990원이었다.
이마트에서는 참조기가 네 마리 9980원이었고, 돼지고기 삼겹살 수육용은 100g당 268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영등포전통시장이다. 영등포전통시장은 역사가 오래된 전통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는 서울 서남부권 쇼핑의 메카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영등포전통시장을 둘러보면서 입구 쪽 먹자골목에만 사람이 몰려 있었다. '추석 대목은 옛말'이라는 듯, 오히려 침체된 모습이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때였지만, 오히려 시장 입구 쪽 먹자골목에선 술판이 한창이었다. 중장년의 남성들이 곳곳에서 치맥을 즐기거나, 생선구이 등을 안주로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채소 가게부터 과일가게, 정육점, 생선가게 등 다양한 가게를 만났지만, 오히려 전통시장을 찾은 손님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용산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는 김희영(29) 씨는 "전통시장이라 먹거리도 많고 뭔가 활기가 넘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조용하더라"면서 "그래도 물건은 무척 저렴하길래 강정도 사고, 떡도 사고, 생선도 샀다. 아무래도 칙칙한 분위기가 이곳을 방문하기 어렵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영등포전통시장 내 상인들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뭔가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물가 통계처럼 영등포전통시장에서 파는 제품들의 가격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크게 저렴했다.
대추는 300g에 5000원, 밤은 1망에 3000원, 배는 3개 5000원, 사과는 4개 5000원에 판매했다.
고사리는 100g 1000원, 도라지는 300g 3000원이었고, 도미는 한 마리 1만5000원, 참조기는 다섯 마리 1만 원, 민어는 한 마리 8000원이었다. 돼지고기 삼겹살 수육용은 100g 1650원이었다.
대체로 전통시장의 물건이 백화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 대형마트에 비해서는 20~30% 저렴했다. 전통시장의 추석 차례상 비용이 대형마트보다 25%가량 저렴하다는 한국물가정보 통계 자료를 현장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런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도 대형마트에 손님을 뺏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시장은 아직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