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마트폰 투톱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미·중 무역분쟁 이후 엇갈린 행보를 보인다. 미국의 제재 속에 고립된 화웨이는 자국 내수시장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스마트폰 공장을 철수하는 대신 화웨이 세력이 약해진 유럽과 중남미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렸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증가한 102조 2000억 원(약 102조 2000억 원)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스마트폰 출하량도 1억850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나 증가했다.
화웨이는 중국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격대인 150달러에서 299달러 가격대 제품의 판매를 강화했으며, 이와 함께 중가 가격대인 300달러에서 499달러 가격대 제품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화웨이 서브 브랜드인 아너가 아너9X 프로를 300달러 초반에 출시했고, 단말기 보상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화웨이는 국제 표준이나 세계 시장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양식이나 기술만 고수하다가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졌다. 과거 일본 IT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 특화된 기술과 서비스만 발전시키다가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줄고 내수 시장 확보마저 위태로워졌는데, 화웨이가 이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웨이는 5월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는 블랙리스트(거래제한) 명단에 올랐다. 인텔, 퀄컴, 브로드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IT업체들로부터 반도체 칩 등 부품과 운영체계(OS) 등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내놓은 메이트 30시리즈는 정식 구매 버전 대신 오픈 소스 버전의 안드로이드가 설치됐다. 이 때문에 화웨이는 유럽, 남미, 인도 등 해외시장에서 메이트30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화웨이가 중국 이외의 시장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삼성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길을 걷고 있다.
삼성은 최근 중국 스마트폰 실적이 부진해지면서 광둥성에 위치한 중국 마지막 스마트폰 생산 공장인 후이저우 가동을 중단했다. 삼성은 퇴직자들에게 퇴직금과 사회보험료 추가분, 최신형 삼성 스마트폰, 브랜드 시계 등을 제공했으며, 이들이 새 일자리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중국 생산공장을 철수한 삼성은 ODM(제조사개발생산) 방식으로 선회하며 경영 효율화에 집중, 빠르게 해외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삼성은 40% 미만이던 남미 시장 점유율을 43%까지 늘리며 역대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고, 중동부 유럽 시장에서는 점유율을 33%에서 40%로 끌어올렸다. 화웨이의 판매량 하락분을 삼성이 효과적으로 흡수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사양 중저가 스마트폰 갤럭시A 시리즈의 활약이 컸다. 삼성은 초기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100만 원 미만 가격대인 갤럭시A 시리즈에 첨단 기술을 먼저 적용했다. ‘갤럭시 A9’에는 쿼드 카메라, ‘갤럭시 A70s’에는 트리플 카메라를 적용했다. ‘갤럭시 A80’에는 갤럭시 제품 중 처음으로 로테이팅(회전) 카메라가 탑재됐다.
그 결과 인도 등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갤럭시A 시리즈의 점유율이 늘면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졌고, 수익도 상승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분기 삼성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1.3%로 전년 동기 대비 1.7%포인트 상승했다. 삼성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1% 성장했다.
삼성은 화웨이가 주춤한 사이 더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늘려갈 전망이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8월 열린 갤럭시노트10 언팩 행사에서 “시장 점유율은 생명이고 수익은 인격이다. 생명과 인격 둘 다 지키는 게 맞지만, 생명부터 챙기고 그다음 인격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