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병은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초기일 경우 그 치료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암이 '관리 가능한 질병'인 것은 아니다.
이 책 '암 정복 연대기-암과 싸운 과학자들'에서는 암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 70여 명의 과학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들 가운데 자기 연구가 암을 고치는 기적의 약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은 단순히 오늘도 연구할 뿐이다. 그저 과학자들의 모험에 가까운 연구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나면 생명을 구하는 약으로 태어난다.
'암 정복 연대기' 속 과학자들은 천재 과학자의 위대한 업적을 따라가거나 빈틈없이 꽉 짜인 내러티브로 채워져 있지 않다. 그저 과학자들이 잘못 예측해 엉뚱한 연구를 하다가 의외의 곳에서 성과를 낸다거나, 이런 일들이 30~40년 정도 쌓이다 마침내 암을 치료하는 신약이 세상에 나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해 표적항암제라는 개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글리벡, 말기 유방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항체의약품 허셉틴, 암 환자 진료 차트에 ‘완치’라고 적어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주기 시작한 면역항암제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는 이들 70여 명의 과학자들과 이름 없이 등장하는 연구팀에 속한 과학자들이 매일매일 분투한 결과다.
이처럼 '암 정복 연대기'에 나오는 과학자들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다 보면, 암과 싸우는 전선의 맨 앞에 서 있는 표적항암제, 항체의약품, 면역항암제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게 된다. 마치 복잡한 수학의 고익은 막무가내로 외워야 하지만 공식이 나온 과정을 알게 되면 외우지 않고 이해하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리벡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1부에서는 초기 과학자들의 암을 어떻게 예측했으며, 예측에 따른 가설을 증명하고 반박해 수정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명과학 태동기부터 과학자들은 암과 싸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에이즈(AIDS)와 같은 질병의 치료법 등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초가 쌓여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허셉틴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2부에서는 현대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의 바탕을 이루는 주요한 이론과 기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엿볼 수 있다. 단일클론항체, 재조합 DNA 기술 등은 암과 싸우는 과정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이런저런 도전과 실패 속에서 확립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재조합 DNA 등의 문제 앞에서 생명과학 윤리를 고민하는가 하면, 역시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저렴하게 치료용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끝은 암 유전자가 일으키는 문제를, 재조합 DNA 기술로 만들어낸 항체로 해결하는 허셉틴의 개발이었다.
환자 자신이 가진 면역의 힘으로 암을 고치는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 등 면역항암제의 탄생 이야기는 3부에서 다룬다. 면역은 생명과학 전공자들에게도 까다로운 분야다. 따라서 면역항암제의 탄생 이야기는 면역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을 함께 설명하며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