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와인, 생수로 이어가며 올해 내내 초저가 경쟁을 벌여온 대형마트들이 이번에는 PB(자체상표) 상품 고급화에 나선다. 박리다매로 몸집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익성 악화가 발목을 잡자 각 사들은 저가 위주의 PB 상품을 프리미엄화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프리미엄 PB 브랜드 ‘시그니처’(Homeplus Signature)를 공식 론칭한다고 28일 밝혔다. ‘시그니처’는 ‘Selected with Pride’라는 슬로건 아래 홈플러스가 품질과 차별성, 지속적인 사용 만족도 등을 모두 고려해 까다롭게 엄선한 상품을 일컫는다. PB상품이 가성비에만 초점을 맞추던 이전과 달리 고급화와 전문화를 표방해 한 차례 업그레이드에 나선 것.
홈플러스는 ‘시그니처’ 로고를 블랙과 골드 컬러가 어우러진 방패 이미지를 활용해 탄탄한 품질과 신뢰를 형상화했다. 소비자들이 방패 이미지만 보고도 믿고 손이 갈 수 있게 품질을 높인다는 포부다. 우선 600여 종의 상품을 시그니처로 구성하고, 회사 대표 브랜드로 육성해 신선식품과 생활용품에 이르는 전 카테고리 PB 상품을 대부분 시그니처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기존 PB상품은 먼저 가격을 설정한 후 개발에 돌입했지만, 시그니처는 품질에 초점을 두고 상품을 만든 후 가격을 결정한다”면서 “오래 두고 쓸수록 생활의 격을 높이는 ‘체감 품질’에 집중해 PB 시장에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PB 전략을 손보기 시작한 곳은 홈플러스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 역시 최근 기존 38개 PB 브랜드를 10개로 줄이는 브랜드 다이어트에 나섰다. 롯데마트 측은 “고객 입장에서 볼 때 여러 종류의 브랜드에서 오는 혼란을 줄이고, 대표 상품 출시를 통해 롯데마트만의 PB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는 균일가 PB 브랜드인 ‘온리 프라이스’를 중심으로 생필품을 초저가에 제공해 소비자들의 가계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상품을 지속해서 제공하는 한편, 가성비를 넘어 상품 경쟁력을 갖춘 대표 상품도 확대할 계획이다.
대형마트들이 자체 브랜드의 새판을 짜기 시작한 이유는 가성비를 높인 제품 외에도 프리미엄급으로 상품 카테고리를 넓혀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미 이커머스에서도 똑같은 상품을 팔고 있는 만큼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강화하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싸구려 제품만 판다는 인식을 씻어내는 것도 마트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실적 개선이다. 대형마트는 올 초부터 전방위적인 초저가 경쟁에 나서며 10년 전 ‘10원 전쟁’을 재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커머스의 공세를 어느 정도 차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적 악화는 뼈아프다.
롯데마트는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6% 늘었지만, 적자를 기록했다. 3분기에는 매출마저 2.6%로 소폭 줄었고, 영업이익은 61.5% 꼬꾸라졌다. 비상장사인 홈플러스 역시 좋은 실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이마트는 여전히 저가 PB 확대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이는 올해 초 “초저가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신년사와 궤를 함께한다. 이 회사는 지난 2분기 사상 첫 분기 적자에도 8월부터 상시 초저가를 선언하면서 저가 전략을 강화해왔다. 이 결과 3분기에는 적자에서 벗어나는 한편 3년 내 최고 매출을 기록하며 반등에 나섰다.
특히 저가 PB 강화는 ‘노브랜드’ 가맹 사업과 ‘일렉트로마트’ 확대와도 관련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노브랜드는 이마트의 저가 PB이자 전문점으로 지난해 말부터 국내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섰고, 이달 중순에는 필리핀 1호점을 열며 해외 진출을 가속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기를 비롯한 대형 TV 등 가성비 높은 PB 가전을 속속 내놓고 있는 체험형 가전매장 일렉트로마트 역시 이마트가 집객 콘텐츠로 활용하는 만큼 가격 경쟁력이 높은 자체 상품 출시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