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특성 반영해 해당 지역서 선정, 선정되면 판매에도 긍정적
아카데미상은 세계 최대 영화상이다.
영화의 본고장 미국 개봉관에서 일정 기간 이상 상영된 작품이 후보들이다.
평가는 비영리 영화단체인 아카데미협회가 진행한다. 오스카(Oscar)상이라고도 불리는데 작품상과 감독상, 남ㆍ여주연상 등 분야별로 25개 부문에 대해 시상한다.
자동차 업계도 오스카상처럼 매년 글로벌 거대 시장별로 ‘올해의 차’를 각각 뽑는다.
한 해 동안 특정 시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 제작했거나 수입해 판매된 차들이 후보다.
아카데미상은 25개 부문이나 되는데 올해의 차는 많아야 2~3차종, 아니면 단 한 대의 모델만 영광을 차지한다.
완성차 메이커로서 수년 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어렵게 개발한 신차가 ‘올해의 차’에 뽑힌다면 아카데미상 못잖게 영광이다.
나아가 이 영광은 단순한 명예에 그치지 않는다. 메이커의 기술력을 입증받는 것은 물론, 판매에도 적잖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시장별로 소비 특성과 주행환경 등 고려 = 올해의 차가 지역별로 특색을 지닌 이유는 그만큼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차가 팔리는 지역의 도로환경과 국민성, 소비 특성, 경제 수준 등에 따라 ‘좋은 차’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도 이유다.
맛있기로 소문난 냉면도 남극에서는 팔기 어렵고, 뜨거운 사막에서 펄펄 끓는 육개장이 안 팔리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대 시장별로 올해의 차가 제각각이다.
대표적인 상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자동차 시장 가운데 하나인 북미다. 미국과 캐나다 시장을 대표하는 ‘북미 올해의 차’는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유는 북미 시장의 진입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차를 팔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중국 토종업체는 물론,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의 자체 생산 모델이 북미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다.
심지어 프랑스 푸조와 시트로엥조차 극히 일부 모델만 북미에서 팔리고, 한국의 쌍용차 역시 북미에 진출한 적이 없다. 그만큼 이곳에서 차를 판매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유럽 올해의 차’의 권위도 인정받는다. 유럽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가장 뛰어난 차를 뽑다 보니 북미 올해의 차와 전혀 다른 궤를 지니기도 한다.
셋째, 판매 수량으로 따지면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인 중국도 매년 ‘중국연도차’를 뽑는다.
중국의 한 해 자동차 시장 규모(약 2800만 대)는 미국(약 1700만 대)을 앞선 지 오래다.
다만 단일 국가에서 선정한다는 배경 탓에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여러 국가에서 선정하는 게 아닌, 특정 국가의 이익이 선정 결과에 부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올해의 차, 후보 등극 자체가 바늘구멍 뚫기 = 북미 올해의 차는 올해로 27회째를 맞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신문, 방송, 잡지, 권위지 자동차 전문기자단 54명의 투표한다.
자동차 생산국인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캐나다 언론이 참여하면서 당위성이 커졌다. 물론 시장 자체가 크기 때문에 권위도 올랐다.
매년 9월 10가지 모델의 1차 후보를 뽑고, 연말에 최종 결선에 나설 후보를 발표한다. 2016년부터 승용차와 SUV에 이어 픽업트럭을 추가해 각 부문에 3개의 후보를 발표한다.
한 해 100가지가 넘는 신차가 발표되는 만큼, 9월에 발표되는 후보 10종에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크나큰 영광이다.
국산차 가운데 2009년 현대차 제네시스(BH)가 처음으로 이 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2012년 현대차 아반떼(MD)가 수상했고 지난해 승용차 부문서 제네시스 G70, SUV 부문에서 코나가 각각 수상했다.
올해는 승용 세단 부문에 현대차 8세대 쏘나타가, SUV 부문 최종 후보에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기아차 텔루라이드가 이름을 올렸다.
현지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텔루라이드를 기아차 최초의 ‘북미 올해의 차’ 수상 모델로 점치고 있다.
뛰어난 성능과 기능이 포개져 높은 상품성을 인정받은 덕이다. 무엇보다 ‘북미에서만 생산하는 북미 전용 모델’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공정하고 치열한 유럽 올해의 차 = 올해로 33회째를 맞는 ‘유럽 올해의 차’도 관심이다.
무엇보다 특정 국가의 이익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인 덕에 경쟁이 치열하다. 20개국 60여 명의 평가단이 평가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019 유럽 올해의 차’에서는 최종 투표 결과 재규어 I-페이스와 알핀 A110이 동점을 기록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결국, 재투표 끝에 재규어 I-페이스가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1차 후보 35종에는 기아차 쏘울과 쌍용차 코란도가 이름을 올렸다. 다만 아쉽게도 지난달 발표된 최종 후보 7차종에는 두 모델 모두 합류하지 못했다.
유럽 올해의 차 선정위원회는 ‘2020 유럽 올해의 차’ 최종 후보로 △포르쉐 타이칸 △BMW 1시리즈 △포드 푸마 △푸조 208 △르노 클리오 △테슬라 모델3 △토요타 코롤라를 뽑았다.
최종 후보에 오른 차종만 살펴봐도 북미 올해의 차 후보들과 뚜렷한 차이점을 지닌다.
영예의 대상은 내년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발표된다.
스위스는 영원한 중립국이자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유럽 어느 지역보다 자동차 회사의 텃새가 작용하지 않는다. 공정한 평가 결과를 내놓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