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성장보다 안정 최우선 ‘보수경영’ 나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최근 내년도 사업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취임 직후 리딩뱅크를 수성하면서 입지를 다져온 조 회장이다. 신한은행 측이 제시한 보수적인 목표이익률(자기자본이익률, ROE)이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 오히려 안정감 있는 성장이 우선이라는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내년 ROE을 올해보다 최대 2% 가량 낮게 잡아 조 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ROE 후퇴는 있을 수 없다는 조 회장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됐고, DLF사태로 금융당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무리한 성장보다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은 것이다.
ROE는 은행의 대표적 수익률 지표다. ROE가 10%라고 가정하면 자기자본 100원을 투입해 한 해 10원을 벌었다는 의미다. 목표수익률, 즉 ROE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의미다. 신한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 모두 내년 ROE를 1~2%포인트 낮게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대 시중은행의 3분기 기준 연 환산 ROE는 평균 10.34%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ROE 목표치는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내년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시중은행이 경영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보수 경영에 나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저금리로 순이자마진(NIM) 하락에 따른 이자이익 감소가 불가피한 데다 금융당국의 규제까지 겹쳤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020년 은행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의 내년 이자이익은 42조9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3조5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자이익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비이자이익 영업활동까지 규제하면서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DLF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공모형 ELS(주가연계증권)를 담은 신탁(ELT)의 은행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현재 은행 판매 잔액 이내에서 고위험 신탁 판매만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총량 규제’에 나선 것이다. 은행 입장에선 더 이상의 시장 확대가 불가능하게 됐다. 내년 경영환경이 어두운 상황에서 진 행장은 조 회장에게 채찍보다 당근이 필요한 시기임을 강조한 것이다. 성과 위주의 경영이 자칫 제2의 DLF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편 신한금융그룹은 조 회장과 진 행장 등 5명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군으로 압축했다. 13일 개별 면접을 거쳐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위원 간 토론 후 무기명 투표로 최종 후보자 한 명을 결정한다. 조 회장의 연임이 우세한 가운데 서열 2위인 진 행장도 스케줄을 변경하면서까지 면접에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