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금감원 제재심, 민간전문가가 위원장 맡아야”

입력 2020-02-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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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의 제기 창구 마련해야…감독기능 일원화 필요”

▲2년 전 금융감독원 ‘금융사 내부통제 혁신방안 TF’ 좌장을 맡았던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금융위원회가 권고안을 바탕으로 법제화를 서둘렀더라면 DLF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이하 제재심)가 공정성을 가지려면 설치법을 만들고, 민간전문가가 위원장을 맡아야 해요. 결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별도의 창구도 마련하고요. 해외처럼 말이죠.”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중징계를 내린 금감원 제재심의 공정성 확보에 대한 조언이다. 그는 제재심이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이긴 하지만, 그 영향력을 고려하면 설립 근거, 논의 절차 등 전 과정에 걸쳐 정당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재제심 위원장을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맡고 있어요. 위원 9명 중 4명은 금감원 내부인사이고요.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기 어렵죠. 결론이 나오면 이의를 제기할 창구도 없어요. 합리적 결정(제재)을 내리더라도, 그 절차와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년 전 ‘내부통제 책임은 CEO 몫’ 혁신안 만들었지만… = 고 교수는 2년 전 금감원이 꾸린 ‘금융기관 내부통제 태스크포스(TF)’ 좌장으로서 5명의 학자들과 함께 혁신안을 만들었다. 그래서 최근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사태가 유독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만든 혁신안에는 △내부통제에 대한 금융기관 이사회·경영진의 역할과 책임 명확화 △준법감시인 위상 및 준법지원 조직 역량 제고 △내부통제를 중시하는 조직문화 확산 유도 △내부통제 우수 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DLF 사태 방지책은 물론, 금융사고 발생 시 사후 대책까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법제화가 이뤄졌다면 DLF 사태는 물론, 징계 논란도 피해갈 수 있었을 거란 얘기다.

최근 윤석헌 금감원장은 제재심이 올린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DLF 판매 당시 하나은행장)에 대한 중징계 의결안을 받아들여 원안대로 결재했다. 문책 경고는 임원의 연임과 3년간 금융권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다. 두 은행은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책임으로 경영진까지 제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했지만, 제재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은행 소명과 상관없이 논의 이전부터 금감원이 이미 처벌 수위를 정해 놨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 명분을 내세운 관치를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권고안의 핵심은 내부통제 책임을 CEO에게 지게 하는 것이었어요. 법제화가 됐다면 DLF 사태와 같은 금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사후적 관점에서 CEO 징계 논란도 없었겠죠. 아쉽습니다.”

◇“사외이사 독립성 가장 큰 문제… 후보 풀 관리하는 제3기관 지정” = 고 교수는 금융사고의 원인을 경영진과 사외이사의 ‘끈끈한 관계’에서 찾는다. CEO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오너의 입김 아래 놓여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금융사 CEO는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추천된 사외이사는 대표이사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구성한다. ‘CEO 셀프 연임’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재작년 금융당국 두 수장이 서로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금융사별로 개선방안(회장추천위원회에서 회장을 제외하는 것)을 내놓았지만, 그 둘의 사이는 여전히 돈독하다.

실제 지난해 말 신한금융 이사회는 채용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던 조용병 회장을 차기 수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만장일치였다. 이후 열린 1심 재판에서 조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아 경영 공백을 피하긴 했지만, 서둘러 연임을 결정한 이사회 독립성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금감원도 이사회에 ‘법률 리스크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우리금융 이사회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손 회장 임기가 석 달이나 남아 있었음에도, 지난해 말 만장일치로 그의 연임에 힘을 실었다. 제재심을 보름여 앞두고 ‘중징계’가 사전 통보된 상태였다.

“현행법상에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대표이사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가지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얘기예요.”

고 교수는 이런 논란을 없애려면 사외이사 후보군을 제3의 기구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사외이사 후보군을 각 금융협회 등 제3의 기관에서 운영하게 하면 이사회 독립성도 상당 부분 제고될 거예요. 후보군이 CEO 인맥이 아닌 민간전문가 추천을 받아 꾸려진다면 이사회도 정상적(경영진 견제)으로 작동할 겁니다.”

◇“금융위-금감원 갈등에 혁신안 법제와 미뤄져… 감독 기능 일원화해야” = 그는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금융회사 내부통제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감독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금융당국의 해묵은 갈등으로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제안이다.

은성수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다소 원만해지기는 했지만, 윤 금감원장은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위반 재감리, 키코 분쟁 조정, 금감원 특수사법경찰 출범 등 사사건건 충돌했다.

두 수장의 성향 차이도 있지만, 조직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 금융위는 금융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공무원 조직이다. 반면 금감원은 금융위로부터 시장 감독·집행을 위탁받은 ‘반민반관’ 성격의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ㆍ감독업무에 대해서는 금융위와 증권선물위원회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 고 교수는 이런 수직적 구조에 따른 갈등 탓에 혁신안의 법제화도 미뤄졌다고 보고 있다.

“금융감독 기능이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나뉜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두 수장이 협력한다 하더라도, 제도적 한계 때문에 감독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기 어려워요. 2년 전 만든 혁신안에 대해 금융위가 ‘감독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우리 영역인데, 왜 금감원이 나서나’란 반응을 보여 법제화가 미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금융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조직만 생각만 하는 거죠.”

해외는 어떨까. 영국의 경우 영란은행(BOE)의 내부기구인 건전성감독원(PRA)과 독립법인인 영업행위감독원(FCA)이 각각 건전성과 영업행위를 감독한다. 소비자 보호 업무 정책은 FCA가 수립하지만 실질적인 민원과 분쟁 처리는 별도 기구인 금융분쟁옴부즈만(FOS)이 담당한다. 한국은 2012년부터 금감원과 별도의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를 분리·설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문재인 정부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다만 정부 조직개편 등 이해관계 때문에 사실상 중단됐다.

“금융위 정책 수립 영역을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감독 기능을 떼 금감원과 일원화해야 해요. 당연히 두 조직 모두 반발할 겁니다. 하지만 금융사고 피해 규모가 날로 커지고, 전 업권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진정한 방안이 뭔지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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