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공포 속에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 분주하게 바뀌며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확산 초반에는 중국을 주요 시장으로 두고 있는 소비 업종 위주로 공매도가 크게 늘었다가, 이번달에는 테마주를 중심으로 급등한 종목으로 타깃이 옮겨가는 양상이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등장한 1월 20일 이후 현재까지 총 84개의 기업이 공매도 과열종목으로 지정됐다. 거래소는 특정 종목에 공매도 거래가 갑자기 집중되면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고, 공매도 거래를 하루 동안 금지한다.
이는 전년 동기간 동안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된 기업 개수(16개)와 비교하면 4배를 넘는 수준이다. 이 기간에 공매도의 집중포화 대상이 된 기업 수가 폭증했다는 뜻이다.
확산 초반에는 중국을 주요 시장으로 두고 있는 소비주 위주로 공매도 거래가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화장품 대장주’로 분류되는 아모레G와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달 20일부터 현재까지 거래 내역 중 공매도 비중이 크게 늘며 공매도 매매비중 순위에서 1ㆍ3위를 차지했다. 매매비중은 각각 30.88%, 22.68% 수준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코스맥스도 20.93%로 5위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1월 말까지 여행ㆍ카지노주(하나투어, 모두투어, 파라다이스, GKL), 화장품주(브이티지엠피, LG생활건강) 등이 과열 종목으로 지정됐다. 중국 시장을 위주로 수익성을 높여가던 일부 의류주(F&F)에도 공매도가 집중됐다. 과열 종목 지정 당일 해당 종목들의 주가는 적게는 5%, 많게는 15%가 넘게 빠졌다.
소비주 주가가 일제히 내림세를 그리자 타깃은 수혜주 쪽으로 옮겨갔다. 1월 말부터 마스크(오공)와 소독ㆍ세정제 기업(서린바이오, 승일, 오가닉티코스메틱), 진단키트를 만들거나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진 바이오 기업(아미코젠, 수젠텍, 피씨엘, 미코)들이 잇따라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됐다.
손 세정제를 제조하는 오가닉티코스메틱의 경우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 현지로부터 61억 원의 제품 주문을 받았다고 밝힌 3일 공매도 거래대금이 5.9배 증가했다. 당일 주가는 15%가 넘게 하락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 진단키트와 관련한 기술 특허를 등록한 수젠텍도 같은 날 공매도 거래가 6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주가가 13.7% 내렸다.
공매도 선행지표라고 불리는 주식 대차잔고도 1월 중순부터 급격히 늘어난 뒤 추이가 유지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현재 주식 대차잔고는 56조1600억 원으로, 지난해 말(47조4000억 원)보다 18.5% 늘어났다. 지난해 8월 58조2069억 원까지 늘었던 잔고는 10~12월 순차적으로 감소해 47조 원대까지 내려가며 코스피 강세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설날 전후로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하락장에 베팅한 투자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증시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공매도와 관련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달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현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폐지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공매도 세력들이 큰 수익을 얻기 위해 개미(개인투자자)에게 금융시장에 대한 공포심과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 청원에는 25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금융당국 역시 시장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감독원 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경제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 관련 풍문 유포, 테마주에 대한 시세 관여 등 시장질서 교란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 단속 방안을 논의했다. 공매도 상위 회원을 중심으로 공매도 규정 위반 여부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