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1인당 배송 물량 22% 늘었지만 인원은 그대로…죽음 예견되는 배송 현장 개선해달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문량이 폭주해 배달 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신입 쿠팡맨이 새벽 배송을 하다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쿠팡 노동조합이 새벽 배송을 중단하고 노동 친화적인 배송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 지부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가 편의를 위해 ‘노동자 착취’를 발판 삼아서는 안 된다”며 “배송 현장이 죽음이 예견되어선 안 된다. 휴식과 안전 등 더 나은 배송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쿠팡 지부는 구체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할 것 △배송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새벽 배송을 중단할 것 △물량 무게와 배송지 환경을 고려한 배송환경을 마련할 것 △이러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교섭에 성실히 임해줄 것 등 4가지를 요청했다.
쿠팡 노조에 따르면 쿠팡맨 1명이 소화하는 배송 물량은 2017년 12월 1인당 210개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8월에는 15% 증가한 242개로 나타났다. 이는 무더위로 배송 물량이 급증하던 때로, 물량 증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이후 3월 현재 이때보다 물량이 22% 더 늘었다.
문제는 쿠팡맨 인력은 현재 6500명가량으로 코로나19 전후로 큰 차이 없이 7000명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다. 본사 측은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물량은 ‘쿠팡 플렉스’ 등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사 관계자는 “쿠팡 플렉스나 쿠팡 퀵플렉스 등 단기 일자리를 코로나19 후 이전 대비 3배가량 늘렸다”며 “(노조의) 처우 개선 요구에 대해 쿠팡맨 인력 충원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팡 노조 측은 본사에서 집계하는 물량은 가구 수 기준인 만큼 가구마다 주문하는 물량이 늘어나면 쿠팡맨 1인당 배송하는 업무량도 늘어나기 마련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2019년 8월부터 이달 11일까지 1인당 배송하는 가구 수는 140~150개로 일정하다.
쿠팡 노조 측은 이러한 물량 측정 방식을 고집하다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쿠팡에 입사한 김모(46) 씨는 12일 새벽 경기도 안산 지역 한 빌라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최근 현장에 투입돼 일해 왔는데 노조 측은 코로나19에 과도하게 업무가 늘어나 생긴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통상 업무의 50% 정도 수준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5년 차 쿠팡맨으로 일하고 있는 정진영 노조 조직부장은 “쿠팡맨들은 계약직으로 들어온 뒤 3개월 뒤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물량이 많아도 현실적으로 쿠팡 플렉스와 물량을 나눠 달라고 요청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특히 사고가 발생한 안산 캠프는 조합원이 없어서 물량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면 주는 대로 배송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교육받고 새로 들어온 사람 30~40명 봤는데 코로나19로 물량이 급격히 늘어 코로나19 전 기존 쿠팡맨들이 배정받는 물량을 현재 신입사원들이 소화하는 중이다. 50% 물량을 배정했다는 본사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쿠팡 지부는 쿠팡맨 28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 휴식 시간 준수율은 31.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1년 8개월째 쿠팡맨으로 일하는 조찬호 쿠팡 지부 조직부장은 “물량 압박에 조기 출근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자로서 보장된 휴식시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회사는 법정 근무시간 내 휴식시간을 준수한다고 대응하지만, 우리는 휴식을 취하든 안 하든 근무시간에서 바로 차감된다”며 “쿠팡은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우리도 살고 싶다. 살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