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마저...” 긴장한 업계
정부는 ‘제2벤처붐’ 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0호(무신사)ㆍ11호(에이프로젠제약) 유니콘 기업이 연달아 나오면서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결과다.
중소기업벤처부(중기부)는 2022년까지 유니콘 기업을 20개 이상 육성하겠단 목표를 내걸었다. ‘K-유니콘 프로젝트’를 통해 차기 유니콘 기업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기부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000억 원의 모태펀드를 출자해 2조5000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스타트업 펀드에는 5200억 원을 출자해 92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점프업 펀드에는 3800억 원을 출자해 95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투자 금액을 단계별로 나눠 유니콘 기업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려고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방식의 펀드를 말한다.
지난달 중기부와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올해 3조3000억 원 규모의 모태펀드 출자 신청이 접수돼 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경쟁률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중기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렵게 조성된 벤처투자 열기가 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VC들이 적극적으로 투자 활동 의지를 보이는 것은 희망적인 신호”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모태펀드 출자 신청 경쟁이 곧 VC 투자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태펀드를 받아간다고 해서 당장 다 집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성진 코스포 대표는 “펀드 운영은 수년에 걸쳐서 하는 것”이라며 “당장 다 집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타트업 투자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큰 틀에서 모태펀드 신청 경쟁률은 높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달리 현실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최근 ‘벤처 투자의 큰 손’으로 알려진 소프트뱅크의 자산 매각 결정도 업계의 우려를 더한다. 최근 일본 최대 IT 투자기업인 소프트뱅크그룹은 4조5000억 엔(약 51조70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연간 수십조 원의 규모로 전 세계 벤처 기업에 투자해 왔다.
이 같은 충격에 국내 스타트업도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1호 유니콘인 쿠팡은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로부터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총 30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소프트뱅크 그룹이 국내에 설립한 VC인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가 국내에서 집행한 투자 금액은 총 2450억 원에 달한다. 작년 한 해 동안에는 당근마켓, 쏘카, 트레바리 등 총 8곳에 373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VC 업체 수석 심사역은 “소프트뱅크의 자산 매각으로 국내 투자를 하는 해외 파트너들은 더욱 투자를 보수적으로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2분기부터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나치게 고평가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크게 낮아질 수 있고, 1분기는 그나마 선방하겠지만 2분기부터는 이 같은 경향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판교 소재 바이오 스타트업 이사는 “4월부턴 투자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으며, 실제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실적 악화로 기업가치가 떨어진 우버, 에어비앤비의 사례는 스타트업의 버블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며 “시장에 맡겨도 버블이 생기는데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 확대’ 기조는 자칫 마중물이 아닌 버블을 키우는 것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마중물’ 이상의 공급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고, 기업가치가 과대평가 되면, 민간 VC들이 들어오기 더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