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듯한 좀비, 빌딩 위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찔한 장면이 펼쳐졌다. 실제 현실에서 가상의 정보를 보여주는 역동적인 그림 덕에 수많은 사람이 포켓몬을 잡으러 거리로 쏟아졌다.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 얘기다.
VR과 AR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간주하며 전도유망한 기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관심과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장조사기관은 VR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2016년 투자 컨설팅 및 시장 조사기관 '디지캐피털'은 VR 시장 규모를 38억 달러에서 27억 달러로 낮췄다. 미국의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 전문 시장 조사기관 '슈퍼데이터' 역시 VR 시장 전망을 기존 대비 22% 낮게 평가했다. AR은 포켓몬고 이후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면서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다.
◇코로나19, VR·AR의 성장 계기?…헬스케어 산업 '훨훨'
물론 VR과 AR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VR 기기들의 비싼 가격과 콘텐츠 빈곤이 고속 성장을 가로막았으나 업계와 시장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임이나 의료 등에서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헬스케어 산업에서 VR과 AR 기술은 유망하다. 이 산업에서 VR·AR은 활발한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다. 글로벌 신흥기술 조사기업인 테크나비오(TechNavio)는 2023년 기준, VR·AR 시장 규모가 34억8456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VR·AR 세계 시장의 용도별 증가 추이를 보면 환자 치료관리가 가장 많고, 의료 연수·교육, 건강 관리, 약국 관리, 수술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그 필요성이 더욱 대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회사도 나왔다.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VR 치료 플랫폼 기업 XR헬스(XRHealth)가 700만 달러(약 86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이동제한 탓에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효과적인 원격의료 체계로 VR을 선택한 것이다.
◇'집 밖은 위험해'…국내서도 VR·AR 활용 방안 고심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에서도 이를 활용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집 밖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여건이 지속하면서 가능성을 내다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할 공산이 크고 앞으로도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집안에서 시간 보낼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VR·AR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동통신사들은 투자를 늘리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게임 수요 많은 국내 상황을 고려한 맞춤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텔레콤은 넥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크레이지월드VR'이란 게임을 출시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 넥슨은 VR과 클라우드 게임 영역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는 등 협력 분야를 확대하기로 했다. LG유플러스는 게임개발사 그램퍼스, VR 콘텐츠 기업 스토익엔터테인먼트와 모바일 게임 '마이리틀셰프'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5G 클라우드 VR 게임 서비스, AR 콘텐츠 제작에 협력하기로 했다.
KT는 교육과 모임에 방점을 찍었다. 개인형 VR 서비스인 '슈퍼VR'에 몰입형 영어 교육 콘텐츠와 VR 원격 모임 서비스 등 실감형 콘텐츠를 강화할 방침이다. VR 콘텐츠 관련 공모전도 진행하고 있다.
◇정부도 지원 사격 "산업 육성할 것"
정부를 중심으로 VR·AR 산업 육성을 위한 청사진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31일, 연내 2677억 원을 투입해 VR·AR 등 실감 콘텐츠 산업 육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가진 국무회의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비대면 산업·바이오 산업·스타트업과 벤처기업'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지원에 탄력을 받았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6일 제2차 ICT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VR·AR 비대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포스트 코로나19'를 준비하면서 이들이 역할이 점차 중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