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서울 강남권 재건축 수주시장에 때아닌 후분양 바람이 불고 있다.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건설사들이 선분양에 따른 비용 절감까지 포기하면서 앞다퉈 후분양을 제안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준공 후 분양’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파트를 다 짓고 일반분양을 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사비 자체 조달까지 재건축 조합에 약속했다.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수주전에서다. 건설사가 조합 측에 100% 준공 후 분양을 제안한 것은 삼성물산이 처음이다. 이에 맞서 대우건설은 선분양 및 리츠 상장(리츠 임대 후 매각)과 함께 후분양 방식을 조합에 제시했다. 잠원동 신반포21차 재건축 수주전에 뛰어든 포스코건설과 GS건설도 아파트 골조공사가 끝난 후 분양을 제안하고 나섰다.
건설사들이 먼저 후분양을 들고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건설사들은 후분양보단 선분양을 선호한다. 착공과 동시에 일반분양을 해야 계약자에게서 받은 분양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어서다.
이와 달리 후분양은 공사 기간 동안 돈이 들어올 구석이 없다. 공사비는 건설사가 자체 조달하거나, 아니면 이자 부담을 안고 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재건축 사업에서 후분양 사례를 찾기 힘들었던 이유다. 실제로 반포3주구와 신반포21차 공사비는 각각 약 8000억 원과 1020억 원에 달한다.
물론 강남권은 미분양 우려가 없어 후분양 부담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자금 부담이 만만찮은 후분양을 제안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건설사들이 재건축 수주에 사활을 걸었다는 방증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역마진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수주전에 뛰어들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7월 말부터 시행되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겨냥한 건설사들의 대응 전략이란 시각이 많다. 분양 시점을 늦출수록 가격(일반분양가)을 올려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후분양 단지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 상한제는 감정평가로 산정한 땅값(택지비)에 정부가 정한 건축비, 그리고 적정 이윤을 따져 분양가를 매기는 제도다. 여기서 택지비의 비중이 가장 높다. ‘공동주택 분양가격 산정 등에 관한 규칙’에는 택지비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한제에선 공시지가(땅값)가 사실상 일반분양가를 결정짓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땅값이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65.5% 수준인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게다가 건축비도 자재비와 인건비 인상 등으로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 삼성물산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반포3주구 재건축 사업을 후분양으로 돌릴 경우 조합 측 분양수입이 선분양 때보다 25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조합으로서는 건설사들의 후분양 제안을 마다할 리 없다. 분양가상한제 시대를 맞아 분양가가 재건축 사업성을 좌우하는 최대 이슈가 된 마당에 후분양은 손해볼 게 없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후분양 단지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둔촌주공과 잠실 진주아파트 등은 7월 말까지 일반분양해 상한제를 피할 수 있는데도 후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재건축 단지들이 너도나도 후분양으로 돌아설 경우 상당 기간 신규 분양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청약을 기다리던 분양 대기 수요가 기존 아파트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면 집값이 다시 들섞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제의 역설이다.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2017년 집권 이후 후분양을 독려해 왔는데 이제 와서 후분양을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건축 단지들의 후분양 전환을 막기 위해서는 공시지가 상승률을 낮춰야 하는데, 이는 이미 발표한 공시지가 현실화 방침과 충돌한다.
분양가를 끌어내려 주변 집값도 잡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 문턱도 낮추겠다는 정부의 ‘선한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 반하는 가격 규제 정책은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섣부른 선의만으로는 시장을 결코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