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안에 있는 자판기에 생소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물티슈 등을 팔던 이곳에서 'KF94'라는 글씨가 새겨진 마스크가 바로 그것. 화장실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도 이제 마스크를 살 수 있게 됐다. 지하철 안에서 이동이 어려울 정도로 혼잡하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대책을 수립하면서 생긴 변화다.
13일부터 서울 지하철은 승차정원 대비 탑승객 수를 나타낸 '지하철 혼잡도'가 150% 이상일 경우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혼잡도는 80% 이하일 경우 '여유', 80~130%일 경우 '보통', 130~150% '주의', 150% 이상인 경우 '혼잡' 단계로 구분된다. 이때 '혼잡' 단계는 열차 내 이동이 어려울 정도로 꽉찬 상황을 뜻한다. 혼잡도가 150%에 이르면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역무원이 마스크 미착용 승객의 진입을 제한할 수 있다.
이같은 변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과 관련이 크다. 확진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었지만 황금연휴 기간 동안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생활 속 거리두기'를 대중교통까지 확대한 것이다. 어렵게 찾은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하철 '혼잡' 시 마스크를 미착용하면 제한하는 첫날인 13일 오전 출근길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자 기자는 대방역과 노량진역을 찾았다.
노량진역에서 만난 김승주 씨는 "출퇴근 시 지하철에 사람이 밀집돼 있는데 가끔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이 있어 불안했다"라며 "이번 대책으로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방역에서 만난 박창호 씨는 "마스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대비"라며 "확진 판정 전까지는 자신이 확진자라는 걸 알 수 없고, 지하철은 밀집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은 좋은 생각"이라고 평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장시간 마스크를 착용하면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자가 만난 대다수 시민은 잘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하철역에 미처 마스크를 챙기지 못한 시민들을 위한 대책도 내놨다. 서울시는 덴탈마스크를 전 지하철역사 내 자판기 448곳에 넣었고, 통합판매점 118곳, 편의점 157곳에서 시중 가격으로 판매한다. 마스크를 챙기지 못한 시민들이 쉽게 마스크를 살 수 있도록 조처했다.
다만 이번 대책을 두고 의문을 표하는 시민도 있었다. 이미 대다수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현실에서 기준을 '혼잡 지하철'로 국한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 특히, 홍보가 활발히 되지 않은 것을 탓하면서 대책 자체를 몰랐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노량진역에서 만난 한 시민은 "혼잡하지 않으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느냐"면서 "이런 산발적인 대책보다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유흥주점은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일 만한 밀폐공간에 대한 대책이 더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비판적인 목소리도 일부 나왔지만, 마스크 착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했다. 마스크는 코로나19의 주요 감염 경로인 비말(飛沫·작은 침방울)을 막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이 더욱 중요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보다 마스크를 쓸 때 5배 정도 더 비말로부터 보호 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 역시 지역사회 감염이 유행할 때는 질병 없는 사람도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