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부 차장
어느 기사를 보면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성형수술을 하거나 명품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또 어느 기사에는 아이 기저귀를 사야 하는데 대형마트에서 쓸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한다. 최근 이사한 사람들은 정작 이사한 곳에서 쓰지 못하거나 거주지 외에서 주로 근무해 쓸 수 없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애초에 소비를 늘려 내수를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그런데 소상공인 지원을 강조하다 보니 대기업 지원은 안 된다는 규제가 생겼다. 그래서 국민이 애용하는 대형마트에서는 쓸 수 없게 됐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대형 프랜차이즈도 서울시민을 제외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스타벅스에서는 서울시민만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
지인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오기 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교보문고에서 책이나 사서 봐야겠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교보문고도 대형 프랜차이즈라 서울시민을 제외하고 지방에선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지자체도 매칭해 재원을 마련하다 보니 사는 지역을 벗어나서는 또 못 쓴다. 그래도 기자라고 주변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어디서 쓸 수 있는지 많이 묻지만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있다.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긴급재난지원금에는 이런저런 규제가 많다. 일각에서는 공무원 손에 들어가면 없던 규제도 생긴다는데 딱 그런 꼴이다.
또 하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를 권장하는 정부도 문제다. 대통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했다고 하니 벌써 많은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 유관기관 등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릴레이 기부하고 있다. 출입처인 기획재정부도 내부 논의를 거쳐 과장급 이상은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아마 민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은 그 돈을 쓰라고 주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마치 소비는 악덕이고 ‘기부’가 미덕인 것 같은 이상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부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국민에게 돈을 주는가? 그냥 정부가 그 재원을 몽땅 기부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애초에 정부는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줄 생각이 없었지만 총선표가 급한 여당에 멱살이 잡혀 그 뜻을 이루진 못했다. 오늘도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를 찾아 헤매는 몽매한 백성을 위해 이제라도 사용처 제한을 없애는 것을 검토했으면 좋겠다. 요즘 날이 좋아 여행을 많이 가는데 지방 재래시장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쓰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