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비 '1일 1깡' 시대를 뒷선 무대에 초(超)흥분…폭주하는 색다른 역주행

입력 2020-05-20 16:57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이 노래가 방탄소년단 DNA보다 3개월 뒤에 나온 노래라니.”

‘역주행인데 이런 역주행은 뭐지?’ 싶은 색다름이 몰려온다. 본디 ‘역주행 곡’이라 함은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 뒤편에서 쓸쓸히 사라져가다가, ‘보석 발굴단’의 눈에 띄어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명곡’에 대부분 붙여졌다.

최근 역주행 곡으로 화제가 된 2PM의 ‘우리집’도 이 분류에 포함된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멤버들의 으른(?)스러움과 대놓고 요구하진 않지만, 마음을 간질이는 가사가 그야말로 기가 찼다. “나 왜 이거 지금 봄”이라는 한탄으로 가득했던 댓글창, 역주행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20일 오후 4시 기준 비 '깡'(왼쪽)과 2PM '우리집' 유튜브 조회수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그런데 이 노래는 달랐다. 부정적인 반응과 조롱 섞인 핀잔과 함께 성장했다. 조롱을 먹고 성장한 노래라고 하기엔 ‘마니아’층까지 갖췄다. 매일 찾아오는 극성 팬덤(?)은 이를 응원하는지 비난하는지 알 길이 없다.

바로 2017년 12월 공개된 가수 비의 노래 ‘깡’이 그 주인공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깡’이란 노래보다 ‘깡 무대’를 꾸미는 비의 모습이 이 열풍의 주된 이유다.

물론 과거이긴 하지만 2017년 작이라고 평가하기엔 많이 뒤떨어졌다. 가사도 내용도 춤도 의상도 표정도 모든 것이 한 발 아니 여러 발 뒤로 물러섰다.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2017년 1월 배우 김태희와 결혼식을 올린 비는 11개월 뒤 ‘깡’으로 무대에 섰다. 당시 비는 이전과는 비교될 정도로 다소 잦아든 인기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지만, 그의 가사는 그렇지 않았다.

“They call it! 왕의 귀환 후배들 바빠지는 중! 신발 끈 꽉 매고 스케줄 All Day 내 매니저 전화기는 조용할 일이 없네 WHOO!”

‘그때 비가 그랬었어?’라는 이 허세 가득한 랩은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거기다 약 10초 뒤엔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허나, 자만하지 않지”라고 외치며 일관성 따위 상큼하게 날려버렸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도대체 그 화려한 조명은 왜 그를 감쌌을까. 이런 표현은 할머니 시대에 배운 문장일까 싶은 어지러움이 동반됐다.

그런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깡’의 완성은 비의 표정과 댄스다. 일명 ‘꾸러기’ 표정으로 불리는 비 특유의 ‘무대 제스처’. “나는 귀엽다”를 100번 외치고서 나올법한 꾸러기 표정에 “나는 섹시하다”를 200번 되뇌어 보고야 할 수 있는 입술 깨물기 연타에 다들 정신이 혼미해진다. 고릴라를 형상화했다는 무대 초반의 춤은 그야말로 ‘입틀막’(입을 틀어 막다를 줄여 이르는 말)의 교과서랄까? 완벽한 재현에 두 손 두 발 이미 다 들었다.

3~4분가량의 짧은 무대를 보며 엎어치기 메치기 뒤치기를 수없이 당한 시청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엑스’(닫기 버튼)를 누르지 못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연속 재생은 필연이었고, 1일 3번 방문은 일상이었다. 묘한 이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루에 3번 깡을 시청한다는 ‘1일 3깡’, 또 이를 빠짐없이 실천하는 ‘깡팸’, 계속 듣다 보니 ‘깡’이 명곡으로 느껴지는 ‘깡각증세’ 등 ‘깡’ 관련 신조어들이 출몰했다.

비의 진성팬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의 ‘시무 20조’는 그야말로 명언이 됐다. 고려 초기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상소문인 ‘시무 28조’의 패러디다. 비가 절대로 피해줬으면 하는 ‘금지 목록’을 빼곡히 적었다.


<비 시무 20조>

1. 재간둥이 꾸러기 표정 금지 2. 입술 깨물기 금지 3. 윙크 금지 4. 중간에 박수치면서 리듬타기 금지 5. 브뤳키다운 관객 호응 유도 금지 6. 소리질러 금지, 뭭썸노이즈 금지 7. 차에 그만 타기 8. 차에서 내리지 않기 9. 화려한 조명 그만 10. 레이번 선글라스 금지 11. 꼬만춤 금지 12. 글씨 새겨진 모자 금지 13. 사회생활 잘하는 작곡가 멀리하기 14. 현재 2020년 현실을 직시하기 15.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자아도취 금지 16. 프로듀서에 손 떼기 17. 센스 있고 영감 있는 프로듀서 새로 구하기 18. 가사에도 손 안대기 19. 인스타 아이디 rain_oppa 변경 추진 20.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지인들 옆에 두기


뼈를 때리다 못해 부숴버린 충언이 아닐 수 없다. 네티즌 모두 그대가 진정한 충신이라며 그의 충심에 무한한 존경을 담아 보낸다.

‘1일 1깡’의 성지에는 이게 뭔가 싶은 글도 계속된다. “체크카드 만들기, 4시에 업체 연락하기, 신발 사기”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이 문구는 바로 ‘할 일 메모’다. 어차피 매일매일 방문하기에 댓글창을 메모창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전혀 어색함이 없는 ‘깡모장’에 어이없는 웃음들도 이어진다.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비는 알고 있다는 점. 16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혼성그룹 멤버를 찾기 위해 비를 만났다. ‘깡 신드롬’을 묻는 말에 비는 “저는 1일 3깡 중”이라며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줬다.

긍정멘트가 없음에도 불구, 사람들이 더욱더 즐겨주었으면 좋겠다며 ‘역시 월드 스타였나’하는 넓은 아량을 선보였다. ‘시무 20조’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라며 끝까지 고집하는 ‘깡’과 함께 “타협하겠다”라는 ‘진심’까지… ‘깡’의 선구자다웠다.

시대를 뒷선 노래. ‘깡’의 재발견은 그래도 즐겁다. 보는 이도 이를 전도하는 이도 그 주인공도 모두 다 마찬가지다. “오늘은 몇 깡 했어?” 계속 쌓이는 깡의 개수만큼 그렇게 우리는 두 배 세 배로 신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