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기술 키우고 수출지역 다변화…전략품목 집중 육성해야
◇ 미·중 분쟁, 의존도 높은 중간재 수출 직격탄 = 우리나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4%다. 저출산·고령화로 내수 성장세가 제약되는 상황에서 믿을 건 여전히 수출뿐이다. 그런 수출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포퓰리즘 성격의 신보호무역주의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과 함께 세계 각국으로 전이되고 있고, 소강국면에 들어갔던 미·중 무역분쟁은 2차전에 돌입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는 GVC 붕괴에 대응해 수입에 의존하던 중간재·최종재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수출에서 70% 이상이 중간재다. 해외에서 최종재 수요가 위축되면 중간재 수요도 함께 위축된다”며 “특히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각국이 생산을 교역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 생산으로 바꾼다면 우리 같은 수출국에는 최종수요 위축보다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수출에서 반도체 등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71.4%에 달한다. 해외로부터 사들인 원자재와 중간재를 다른 중간재로 만들어 되파는 구조다. 최종재를 생산해 내수시장에 공급하는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이나 무역분쟁 등을 이유로 수요가 줄어든다면, 그 타격은 고스란히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에 전해질 수밖에 없다. 주요 수출국이 중간재 국산화로 투자·고용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다면, 이는 두말할 것도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국가별로는 중국·미국 의존도가 큰 것도 문제다. 무역분쟁으로 두 국가의 수요가 위축되면 우리 수출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 수출에서 미·중 비중은 각각 25.1%와 13.5%에 달했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신보호무역주의정책의 경제적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분쟁은 한국의 대중 교역조건을 개선하나, 대미 교역조건은 악화시킨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중 교역조건 개선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일례로 한국은행은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영향으로 국내 성장률이 0.4%포인트(P) 하락했다고 추산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국에 대한 중국의 수출을 우리가 대체한다면 긍정적이겠지만,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중간재로 만드는 최종재 수출도 준다면 우리의 중간재 수출도 감소할 것”이라며 “여기에 무역분쟁 장기화로 중국의 내수 자체가 위축되면 전 품목에 걸쳐 중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수출지역 다변화·기술력으로 돌파하라 = 선택지는 수출지역 다변화와 기술력이라고 봤다. 현재 우리 수출은 제조업에 쏠려있는 탓에 수출이 줄면 국내 설비투자가 줄고, 이후 일자리 감소와 내수 위축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우리는 싸게 만들어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라며 “문화와 콘텐츠, 기술력 등 무형자산, 인적자본에 의한 생산 수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BTS로 대표되는 케이팝(K-pop)이 대표적인 예다.
단, 품목 다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규철 실장은 “품목 다변화가 좋은 말 같지만, 달리 말하면 경쟁력 없는 상품도 생산하자는 것”이라며 “품목만 늘렸다간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잘할 수 있는 품목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단기간에 경제·산업구조를 바꾸기 어려운 만큼, 수출 충격을 내수로 상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교수는 “내수는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놔두면 그냥 죽게 된다”며 “민간소비, 정부지출, 기업투자 등에 보다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투자도 물적자본보단 인적자본에 집중해야 한다”며 “갈수록 노동력이 희귀해질 것이기 때문에, 노동의 양을 늘리기보단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