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묶였지만 해제땐 땅값 두배" 투기꾼까지 '알박기'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말죽거리근린공원 둘레엔 현수막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장기 미집행 시설 보상할 수 없다면 빨리 해제하라’, ‘수십 년간 묶어 놓은 재산권 돌려주오’, ‘공원 해제하라’와 같은 문구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공원 부지에 무단 침입하면 고소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현수막을 달아놓은 건 이 공원 부지에 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몰제 적용 대상인 공원 부지를 도시자연공원 구역으로 다시 지정하려는 서울시와 서초구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자체는 최근 토지주들에게 도로와 연접한 일부 부지만 우선 수용하고 나머지 부지는 공원구역으로 묶어두겠다고 통보했다. 최재혁 말죽거리공원 보상대책위원장은 “이대로면 안쪽 땅은 고립돼 쓸모없는 곳으로 전락하면서 세금만 내게 생겼다”며 “공원구역 지정은 사유재산 침해 기간을 제한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어긴 조치”이라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 가족은 20년 전 양재동에 땅을 마련했으나 공원 부지로 묶인 탓에 아직까지 활용을 못 하고 있다. 말죽거리근린공원 부지 가운데 73.7%를 가진 다른 민간 토지주 사정도 비슷하다.
◇18개 미집행 구역 70%가 '사유지'… 토지주 "재산권 침해" 소송 움직임
도시공원에 관한 갈등 대부분은 이처럼 민간 토지를 활용해 공공공원을 만들 때 발생한다. 서울시의 경우 보전을 결정한 미집행 공원 부지 67.5㎢ 가운데 31.9㎢(46.3%)가 사유지다. 18개 구역에선 사유지 비율이 70%가 넘는다. 이들 사유지의 토지 가치 총액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해마다 1조 원씩 올라가지만 시는 예산을 이유로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보상이 미뤄지면서 토지 권리 관계는 더 복잡해졌다.
도시공원 일몰제를 둘러싼 다툼엔 기획부동산 회사까지 가세했다. A사는 올해 초 일자산도시자연공원 부지 내에 있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임야 8371㎡의 지분을 나눠 팔았다. 현재 이 땅은 A사를 빼면 62명이 평균 135㎡씩 나눠 갖고 있다. A사는 이 땅이 공원 부지에서 해제되면 가치가 배로 뛸 것이라 홍보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땅을 공원구역으로 지정, 보전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투자자만 발이 묶인 셈이다. 노원구 월계동과 동작구 사당동에서도 기획부동산 업체, 지역주택조합 등의 개입으로 토지 소유자가 1000명이 넘는 필지가 생겼다. 각 자치구에선 토지주 동의를 일일이 받기 어려우면 수용 절차를 통해 토지를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도시공원 존치 문제는 법정 다툼으로도 번질 기세다. 전국도시공원피해자연합에선 공원구역 지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준비 중이다. 기한 없는 개발 제한으로 일몰제를 무력화하는 공원구역 제도는 일몰제 도입 근거가 된 헌재 판례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말죽거리근린공원 등 각 공원구역 소유주 수십 명도 각각 구역 지정 고시에 맞춰 행정소송을 제기할 기세다. 일부 로펌(법률회사)에선 일몰제 논란을 대목으로 여기고 수임 영업에 나섰다. 서울시에서도 소송전을 예상해 대응팀을 꾸렸다.
◇전문가 "빠른 보상ㆍ재원 확보 필수"
전문가들은 도시공원 일몰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합리적인 보상과 그를 위한 재원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수나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지자체에선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원을 매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보상이 늦어진 탓에 호미로 막을 걸 포크레인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결 방안으로 토지주에 대한 재산세·소득세 감면, 부지 매입비 국고 지원 등을 제안했다. 김 활동가는 “환경에 부담을 주는 교통·에너지 분야에서 일종의 녹지세를 거둬 공원을 유지하는 방안도 정부가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토지보상 전문가인 신태수 지존 대표는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권을 제약하는 데는 한도가 있어야 한다”며 “무작정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묶어놓고 보상 예산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게 아니라 민간공원 특례 제도, 토지 은행제(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국가 차원에서 매입·비축하는 제도) 등 다양한 정책 옵션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교통부에도 “남의 나라 일처럼 팔짱 끼고 지켜볼 게 아니라 토지 매입 비용을 반액은 분담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