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 정성창 소장
지식재산이라는 전문영역과 사회 일반의 보편적 생활양식인 문화가 교차하는 공간을 우리 사회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일본에서는 지식재산과 문화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대학입학시험에 지식재산 문제 출제
중국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지식재산을 원천적으로 부정했다. 중국이 지식재산제도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등소평의 개방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특허가 뭔지도 모르니 먼저 특허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다. 중국 정부는 1982년도에 선진국의 특허제도를 배울 인력 30명을 해외에 파견했다. 1987년에는 중국의 명문 종합대학인 중국런민대학에 지식재산교육연구센터가 설치되었다. 20여 년이 지난 2008년 우리의 총리실 격인 국무원은 정부의 지식재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지식재산 교육과 인재육성을 포함 시켰다. 지식재산 교육의 대상은 당과 정부의 지도 간부, 공무원, 예술창작자 등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베이징 대학, 칭화대학 등 중국의 지식재산교육연구센터는 100개 가까이 이르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대학 입학시험에 지식재산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중국의 대학 입학시험은 지역별로 다르므로 모든 수험생이 지식재산 문제를 푼 것은 아니다. 눈여겨볼 사항은 지식재산 문제가 과학이 아니라 중국 역사와 중국어 등 인문학의 영역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아마도 출제 당국이 지식재산이라는 주제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보편적 지식이자 문화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재산 문제가 출제된 것이 지난해가 처음도 아니다. 중국의 관영 신문인 차이나 데일리는 2018년에도 출제된 바 있으며 배점은 지난해보다 더 높아졌다고 했다. 시험 문제의 수준도 예사롭지 않다. ‘개방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한 지식재산 보호의 역할을 설명하라.’ 논술형 문제로 여간 공부를 하지 않고는 짧은 시간에 풀기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것은 중국의 고교 교육과정에 지식재산이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수천만 명의 수험생이 공부하였을 것이고, 수만 명의 교사가 제자들에게 정답을 가르쳤을 것이며, 수백 개의 교재에 지식재산의 중요성이 서술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 드라마와 방송이 지식재산 대중화를 선도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지식재산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지식재산 입국을 선언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이후 특허청 개혁, 특허소송제도, 전문인재와 문화조성 등 다방면에서 공을 들였다. 드디어 문학과 방송계에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 문학상인 나오키상에 ‘시타마치 로케트’라는 작품이 선정되었다. 이 소설은 로켓 발사 엔진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빼앗으려는 대기업에 대항하여 특허전략을 펼쳐 마침내 승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이듬해 일본의 주요 방송사 중 하나인 TBS의 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라디오 방송을 탔다. 인기가 워낙 좋아 2015년에는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드라마는 방송의 황금시간대인 일요일 저녁 9시에 안방의 시청자를 찾아갔다. 배역도 예사롭지 않았다. 주인공은 일본 최고의 남자 배우인 아베 히로시가 맡았으며 묵직한 연기로 시청자의 감동을 자아냈다. 당시 필자는 일본에서 근무 중이었다. 지인들과 모임에서 단연 화제는 이 드라마였다. 동석한 모 기업의 특허담당자는 사장님이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특허가 중요하니 잘 챙기라며 격려를 하고 갔다고 했다. 드라마가 사장님 특허 교육을 해 준 셈이었다. 드라마가 종료되고 이듬해인 2016년 5월 아베 총리는 지식재산 전략본부 회의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식재산을 창조하고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초중고의 국어, 수학, 과학 등 전 과목에 걸쳐 발명과 지식재산의 내용을 추가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지식재산 창조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식재산 스토리텔링에 대한 기대
인근 두 나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중국이 정부 주도로 지식재산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 일본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주도이든 민간 주도이든 지식재산이 점차 중요한 시기에 국민 다수가 지식재산을 쉽게 접하고 이해하는 문화가 중요함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지식재산 문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움직임이 있다. 지식재산스토리텔링협회(IPSA)라는 단체가 그 주인공이다. 지식재산에는 발명자, 투자가, 기업가의 땀과 열정 그리고 때로는 극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지식재산에 얽힌 이야기가 널리 퍼진다면 자연스럽게 지식재산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고 사회적 인식도 개선될 것이다. 지식재산 문화조성,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지식재산 스토리텔러들이 활약하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