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차장
2000년대 들어 현대ㆍ기아차의 비약적인 성장을 주도한 주인공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입니다.
그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동안, 그룹은 적잖은 성공을 거뒀지요. 이 성공을 밑거름으로 20년 만에 자동차와 함께 도심항공 모빌리티, 로보틱스라는 뚜렷한 방향성을 세웠고, 미래 전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룹의 탄탄한 기본기, 나아가 정 회장이 뚝심으로 다져놓은 현대차그룹의 조직력이 존재합니다
꼭 필요한 시기에 “800만 대 생산 판매”를 강조하며 양적 성장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품질 경영”을 강조한 게 오늘날 현대차그룹의 밑거름이 된 것이지요.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장 경영’입니다. 말 그대로 개발 또는 생산 현장을 찾아가 사업장을 점검하는 일인데요. 국내는 물론, 글로벌 주요 사업장에 직접 날아가 현장을 점검하며 임직원을 격려하는 한편,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장 경영’은 정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3월 기아차 대표이사에 오른 송호성 사장은 취임 직후 수출과 생산현장을 잇달아 찾았습니다.
신형 카니발 출고를 앞둔 이달 초, 소하리공장을 찾아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구상도 밝혔습니다. 말 그대로 '현장 경영'이었습니다. 앞서 5월에는 평택항 수출현장을 찾아 현장경영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계열사 CEO가 현장을 직접 찾아 임직원을 독려하고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입니다. 다만 이제껏 현대차그룹에서는 이런 CEO의 행보는 조용히 이뤄지고는 했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총수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현장 경영'을 일개 계열사 CEO가 함부로 공유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으니까요. 나아가 ‘회장님의 현장경영’ 가치를 사장 따위가 희석하지 않겠다는 충성심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습니다.
그래서 송 사장의 잇따른 현장경영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반가움과 어색함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도발"이라는 단어까지 들려왔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직설적인 평가가 그동안 현대차그룹이 얼마나 변화에 인색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송호성 사장을 옆에서 지켜본 기아차의 한 임원은 “송 사장께서 이전부터 ‘소통’에 코드를 맞춰왔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아온 추진력도 이런 소통에서 시작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현대차그룹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자율근무복과 틀을 벗어난 기업 분위기가 아닌, 경영 스타일 자체가 변화를 맞고 있는 셈이지요.
그 배경에는 새롭게 경영 전면에 나선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존재합니다. 계열사 CEO가 직접 대대적인 현장경영에 나서지만, 정작 그룹경영 전면에 나선 정 수석부회장은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변화 속에서 더 많은 현대차그룹 CEO가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이제 주위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니까요.
기업의 변화는 이렇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굳이 총수가 직접 식판을 들고 직원식당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junior@